`이·팔 전쟁` 후폭풍…韓서도 혐오범죄에 떠는 유대인·무슬림

전쟁 후 세계 각지에서 혐오범죄 발생
국내 무슬림·이스라엘인 모방범죄 우려
"혐오범죄 가능성 경각심 갖고 바라봐야"
  • 등록 2023-10-22 오후 3:26:43

    수정 2023-10-22 오후 7:43:06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이름과 국적을 숨기고 지내고 있어요.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장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반유대주의, 반이슬람주의에서 비롯된 혐오범죄가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이스라엘인과 무슬림 사이에서도 “우린 안전하지 않다”며 혐오범죄를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美서 증오범죄로 희생된 팔레스타인계 소년 장례식(사진=로이터)
4년 전부터 한국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인 A씨의 일상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난 7일 이후 뒤바뀌었다. A씨는 19일 전쟁 이후 자신의 이름과 국적을 숨기고 있다. 그는 “전쟁이 발생한 뒤 하마스 지도자가 무슬림들에게 이스라엘인을 다 죽이라고 선포한 사실이 알려져 해외에서 지내는 이들도 무서워하고 있다”며 “학교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국적을 말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고, 요즘은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인 B씨도 혐오범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직 제안에 쉽사리 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 있기 전과 다르게 요즘 굉장히 많은 나라에서 일자리를 제안하는 문자가 온다”며 “구직 기회일 수 있지만 테러리스트가 보낸 것일 수도 있어서 무시한다”고 말했다. B씨는 “긍정적인 삶을 살려고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린 범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매우 우울하다”며 하소연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무슬림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이슬람교인 샤피카(Syafiqah, 24)씨는 “우리도 혐오범죄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은 종교에 의한 것이고, 지금 나타나는 범죄들은 제노사이드와 같다”며 “우리는 히잡을 쓰기 때문에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무슬림 사키브(saqib, 37)씨도 “증오범죄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지만 미리 알 수 없다”며 “나 역시 두렵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니까 싸움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정부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발생하는 혐오범죄를 참고해 국내 상황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지난 14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선 70대 백인 남성이 팔레스타인계 모자에게 수십 차례 흉기를 휘둘러 아들은 죽고 어머니는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모자가 살던 주택의 집주인으로, 뉴스를 본 후 분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프랑스 당국은 지난 17일 최근 프랑스의 문화명소와 여러 국가의 학교에서 폭탄 위협을 접수했으며, 반유대주의 증오범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연구위원은 “201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50일 넘긴 대규모 전쟁을 할 때는 지금처럼 혐오범죄가 있지 않았다”며 “전 세계가 친팔레스타인과 친이스라엘이란 양극으로 치닫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성 연구위원은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 모방범죄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며 “한국사회도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은 “대한민국에선 이슬람에 대한 혐오 정서가 전에도 관찰됐는데 이번 일로 이슬람의 이미지가 테러로 각인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슬람 교인과 극단주의자를 구분하고, 전쟁 피해자들을 인도주의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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