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변칙 상속, 부당내부거래, 주주를 무시한 방만 경영 등. 재벌의 문제점은 올해도 참여연대의 감시망에 어김없이 걸려들었다. 참여연대의 이런 활동을 가장 눈에 가시처럼 여겼을 대상은 아무래도 삼성, LG, SK, 현대 등 국내 4대 재벌이었을 것이다. 참여연대는 이들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각종 부당지원이나 부당내부거래, 탈루혐의 등을 포착해 제보하고 조사를 요청하는 등 감시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삼성 이재용씨 변칙 증여 파헤쳐
올해 가장 큰 이슈는 삼성 이재용씨 변칙 증여에 관한 참여연대의 활발한 문제제기였다. 이재용씨가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증여세 탈루혐의가 있다고 제보한데 이어 삼성전자가 직원이 아닌 이재용씨에게 우리사주 부여 및 이재용씨가 최대주주인 서울통신기술에 대한 부당지원, 이재용씨가 역시 최대주주인 8개 인터넷 벤처기업에 대해 변칙증여의혹 등을 제기하며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각종 탈루세를 징수하고 시정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삼성SDS를 상대로 "신주인수권부사채 무효소송"을 벌이면서 원고가 되는 삼성SDS 소액주주 뿐만 아니라 삼성 SDS의 대주주인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물산의 주주들을 공개적으로 모집해 법정소송에 힘을 실었다.
삼성 관련 또하나의 이슈는 삼성생명 상장 유보로 삼성차에 대한 손실을 다른 삼성 계열사가 짊어질 운명에 놓였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우선 삼성전자 이사들이 삼성차 손실을 보전해주지 못하도록 위법행위유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건희 개인이 책임져야 할 경영상의 부실을 삼성계열의 주주들에게 떠넘기는 행위는 정당치 못하다는 것이다.
◇LG그룹 부당내부거래 문제제기
LG그룹의 경우 5개 계열사가 주식 고가매입 등의 방법으로 구본무 회장 등 특수관계인을 지원한 사건과 LG화학이 비상장 주식인 LG칼텍스 정유와 LG유통의 주식을 특수관계인들로부터 다량 매입한 사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대주주에게 부당한 자본이득을 안겨준 불공정거래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데이콤이 DMI를 통해 순손실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LG인터넷(채널i) 인수를 시도한 것 역시 LG인터넷의 대주주인 LG전자와 LG전선에 대한 부당지원행위라며 조사를 요청했다.
◇현대 및 SK도 감시 레이다에서 못 벗어나
현대그룹에 대한 참여연대의 문제제기는 올해 초 현대투신의 바이코리아펀드 불법운용에 대함 폭로로 시작됐다. 참여연대는 이어 현대증권 외자유치 이면계약 의혹 제기,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및 이창식 현대투신 사장 등 임직원 4명에 대해 현대그룹 부실에 책임을 묻고 사퇴를 촉구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했다.
또한 현대건설 1차부도시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현대중공업 이사회앞으로 현대건설에 대한 부당지원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는 팩스를 보내는 등 주주들의 입장에서 경영자 독단을 견제했다.
SK에 대해서도 텔레콤이 글로벌 소유 부지에 신사옥을 짓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부당내부거래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기업인들의 방만한 경영에 회초리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 추궁 역시 참여연대의 몫이었다. 올해 배임죄로 고소한 건은 2건. 우선 현대증권의 이익치회장을 배임죄로 고발했다. 이회장은 영업상 관계없는 현대중공업이 매입한 현대투신 증권을 책임지고 매각 또는 인수한다는 각서를 제공해 현대증권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이재용씨가 삼성 SDS BW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이사회 결의에 찬성한 대표이사 김홍기 등 6인의 경영진도 배임죄 혐의를 벗지 못해 고소당했다.
◇재벌 상대로 힘겨운 싸움
그러나 이들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쉽지는 않다. 참여연대가 대기업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한 건 중에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은 경우는 거의 없다.
삼성SDS의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고소는 서울지검, 고검, 대검에서 잇따라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결국 참여연대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참여연대는 유일반도체 BW 저가 발행 사건에서 장성환 사장은 배임죄로 구속됐는 등 다른 기업과 관련된 비슷한 사건의 경우와 다르게 처리하는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또한 이재용씨 변칙증여와 관련해서 4월26일 국세청에 제보하고 조사를 촉구한지 8개여월이 지나도록 "조사가 진행 중이니 기다려달라"라는 답변만 받았다. MBC PD수첩 취재팀이 이재용씨 탈루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안정남 국세청장의 기습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완강히 거절하며 건물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처럼 삼성 탈루 문제에 대해 국세청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이유는 전직 국세청 고위관료들 다수가 현재 삼성측 사외이사로 있어 삼성측의 로비가 다른 기업보다도 더 집요하기 때문이라고 참여연대는 풀이했다. 한진그룹의 경우 세무조사 개시 5개월 반만에 납세고지서를 발송한 사례를 제시하며 삼성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의지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희망은 보여
그러나 모든 사건에서 패배하고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99년 제출한 삼성SDS 신주인수권행사등금지가처분 신청이 서울지방법원에서는 기각됐으나 고등법원에서는 인정됐으며 무효소송에서는 1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으며 현재 본안소송이 서울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다.
참여연대 이승희 간사는 올 한해 참여연대의 활동에 대해 "추상적이고 구호성에 불과한 대안이 아니라 법적 대응 등 현실성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했다"며 "적어도 소액주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고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재벌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친 점 등의 성과는 있었다"고 말한다.
재벌기업들은 참여연대의 "제동걸기"에 대해 대외적으로는 "무반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듯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참여연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사회 의결 방식이 기존 총수 개인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반면 최근에는 사소한 문제까지도 정식 절차를 밟는 등 총수의 영향력이 축소돼가고 있는 점 등은 참여연대가 노력해온 성과가 하나 둘 씩 가시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