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신용불량자…경제적 취약층 ‘먹잇감’
통장 명의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비정상적인 통장인 대포통장은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 행위에 악용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양산한다. 개인 통장 신규 개설 기준을 강화하고 지연인출제도 기준도 하향 조정(300만→100만원)하는 등 시중은행과 금융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포통장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주로 김씨 같은 취업준비생이나 저신용자 등 당장 돈이 필요한 경제적 취약 계층이 대포통장 범죄의 먹잇감이 된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개인·법인 통장 매매합니다” “통장 사드립니다, 남녀노소 불문, 당일 입금” 등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유혹하는 글들이 활개치고 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대포통장의 가격은 150만~2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과거와 달리 개인 명의의 통장 발급이 까다로워지자 유령 법인을 내세워 법인 명의로 개설한 통장을 이용한 범죄도 경찰에 잇달아 적발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유령 법인 명의로 대포통장을 대량 개설해 판매한 주범 2명을 구속하고 법무사 사무원 등 범행을 도운 7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해 8월까지 1년간 유령 법인 161개를 만들고 이들 법인 명의로 계좌 총 487개를 개설해 개당 200만원에 판매, 10억원 상당의 수익을 올린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다.
이렇게 만든 대포통장을 불법 인터넷도박 사이트 운영자 등에게 판매해 총 10억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올렸다. 경찰 관계자는 “법인 명의로는 비교적 다수의 통장 개설이 수월하고 등기소 공무원들이 법인 신고서류를 형식적으로 검토한다는 점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단속이 강화되자 해외 거주 외국인까지 범죄에 끌어들이는 신종 수법이 등장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포통장 판매에 그치지 않고 이런 통장으로 입금되는 돈까지 가로채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실직자와 취업준비생 등의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범죄 조직에 팔아넘긴 뒤 이 통장으로 입금되는 돈까지 가로채는 수법으로 총 60여 억원을 챙긴 일당을 붙잡았다. 개당 110만~150만원씩을 받고 대포통장을 인터넷도박 사이트 운영자나 대출 사기 조직 등에 팔아치웠다. 그러고는 현금카드와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재발급 받은 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몰래 빼돌렸다. 은행에 부정 계좌로 신고해 출금을 막은 뒤 대포통장 구매자에게 “입금된 돈 일부를 주지 않으면 계좌 정지를 풀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으로 통장 판매 대금 이외 30여 억원을 더 챙겼다. 범죄자가 다른 범죄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대포통장 확보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범행은 대담해지고 있지만 적발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온라인 상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거래의 경우 적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금감원 측은 “대포통장 근절 대책 및 취업사기에 대한 홍보 강화로 대포통장 확보가 어려워지자 공개 모집 방식으로 대담하게 진화하고 있다”며 “구직자를 대상으로 대포통장을 공개 모집하거나 유령 법인의 서류를 이용해 법인 통장을 개설하면 계좌당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시민감시단 등 사회적 감시망을 활용한 모니터링 채널을 다양화 하고 대포통장 신고 포상금 상향(최대 50만원→100만원)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