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기업어음(CP) 시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IMF 경제위기의 한 원인으로도 지목되며 시장에서 관심을 끌지 못했던 CP가 기업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다시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무엇보다 CP에 대한 수요과 공급이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CP는 마땅한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해 발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 은행 신탁계정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시중금리가 오름세에 있다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오름세는 분명하지만 정확히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능한 자금운용을 짧게 가져가려는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일치하며 CP가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CP는 옛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을까.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금융시장의 구조가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 상황에서 CP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 낼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 확연히 달라진 금융시장
IMF 경제위기전 CP는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됐다. 수요처에서도 수신경쟁에 몰입하며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고 좀 더 수익률이 좋은 CP를 사들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당시엔 CP 만기도 무의미할 정도였다. 신탁계정에서 월복리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발행시점에서의 CP만기는 무의미했다. 만기를 쪼개며 수익률을 보장하는 이면계약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CP시장 모습은 영 딴판이다. 우선 발행자의 자금구조에 따라 매우 차별적으로 CP가 발행되고 있다. 신용카드사들이 최근 발행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카드사들의 신용등급은 모두 최상급이다. 수요처인 은행 신탁 입장에서는 그만큼 리스크를 줄인 셈이다. 제조업체들의 발행은 아직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신용카드사들은 현금서비스등 단기대출 상품의 자금 확보를 위해 1개월짜리 CP를 선호하고 있다. 카드사들의 자금조달 원천은 분명히 카드채다. 하지만 CP가 최근의 금융시장 동향을 반영하며 틈새를 파고 들고 있는 셈이다.
수요처중의 하나인 은행 신탁에서도 적절한 타이밍에 신탁상품 만기가 자율화됐다. 지난해 말부터 1개월짜리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1개월짜리 CP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근 주요 카드사들은 1000억원에서 2000억원씩 대규모로 CP발행에 나서고 있다. 대개 은행 신탁계정은 입도선매 형식으로 발행자들의 CP물량을 거둬들이고 있다.
◇ 고조된 분위기…옛 영화 가능한가
최근의 이 같은 상황으로 CP가 옛 영화를 회복할 수 있을 지 주목받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질적으로 개선된 금융시장의 여건을 감안할 때 옛 영화를 회복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의 순기능을 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평가다.
최근엔 신용카드사의 발행물량과 수요처인 은행 신탁계정의 수요물량이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신용카드사들이 대규모 CP발행에 나서고 있지만 그 수는 적은 편이고, 은행들도 아직은 제한적으로 만기단축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 한미 하나 조흥은행 등만이 CP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규모가 큰 한빛은행과 농협 신한 외환은행 등은 아직 CP편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수요처인 은행의 사정도 차별적이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아직은 CP시장이 옛 영화를 회복할 정도는 아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CP시장의 앞날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 자체가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CP시장의 가장 큰 수요처였던 종금사는 사실상 휴업상태다. 제조업체들의 CP발행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큰 기대는 어렵다.
특히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CP에 박힌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어내지 못하는 이상 순기능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단기전망은 쾌청
그럼에도 불구하고 CP시장의 올해 전망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카드사들의 발행물량이 아직은 수요를 크게 넘어서고 있으며, 무엇보다 올해중 신규 카드사들이 증가할 것이라 점이 긍정적이다.
시장 관계자는 "일단 기존 카드사들의 물량은 최소한 올해중에는 계속 리볼빙되면서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올해중 많은 은행들이 신용카드 부문을 분사할 것이기 때문에 전체 물량은 크게 증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망했다.
제조업체들이 CP시장에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지만 아쉬운대로 카드사들의 물량만 보더라도 분위기를 반전시킬만한 모멘텀으로는 충분하다. 특히 기존 종금사가 사실상 이 시장에서 떠난 것을 감안하면 은행들의 식욕은 아직 왕성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같은 분석은 향후 시중금리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에서 국공채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회사채가 적정수준의 지위를 회복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직은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지만 금리 오름세가 언제 가시화되느냐도 중요한 변수중의 하나다.
현재는 카드사들이 밀려드는 현금서비스 수요를 커버하기 위해 CP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곱게 보고만 있지는 않은 것도 현실이다.
수요처인 은행 신탁의 만기자유화 문제도 동전의 양면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정책당국은 신탁상품의 장기화를 꾸준히 유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사위기에 빠진 은행 신탁을 되살리기 위해 신탁상품 만기 자유화가 이뤄졌다는 것도 CP시장을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