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말에 '낙엽 산행'을 떠난다는 트레킹 전문가 윤치술씨는 그러나 "진정한 산을 보려면 지금 떠나야 한다"며 "산은 황량할수록 적막하고 그래서 더 산답다"고 말했다. 산이 가장 산답다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의 산행(山行). 그 난해한 매력을 전문가들에게 꼬치꼬치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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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춥다고? 그 알싸한 맛에 올라가는걸요
"산행은 원래 쌀쌀해야 제 맛이다. 몸을 움직일수록 더워지는데, 날까지 따뜻하면 오히려 오래 걷기가 힘들지 않나. 적당히 알싸하고 차갑고 쾌청한 늦가을 날씨는 그야말로 걷는 맛 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땀도 금세 식고, 몇 시간을 걸어도 거뜬하고. 숲에서 커피 향처럼 은근한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꽃도 나뭇잎도 없는 을씨년스런 숲이지만, 묵어가는 낙엽과 나뭇가지에서 아주 은은한 향기가 나는데, 그 냄새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늦가을 산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봄·여름산이 예쁘게 단장한 아가씨라면, 내게 늦가을 산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외출 나온 아내 같다."
::: 부드럽고 폭신한 낙엽… 제대로 하늘 보는 맛
"낙엽산행을 떠나기 딱 좋은 때다. 울긋불긋하던 단풍이 떨어져 내려 낮게 깔리면, 산길이 아주 폭신해진다.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의 촉감이 비할 데 없이 부드럽다. 하늘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때도 지금이다.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린 숲에서 바라본 늦가을 하늘은 드넓고 청명한 데다 쪽빛으로 환하게 빛나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구의산악회 회장 강영일
::: 호젓한 산속… 마음가짐 달라진다
"해마다 산악 동호회 회원들은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송년산행이라는 걸 떠난다. 산행을 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셈인데, 숲이 앙상하고 적막할수록 호젓한 매력을 풍기기 때문에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좋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에도 참 좋다. 계절마다 매혹이 각기 다르게 마련이다. 봄과 여름엔 마음이 들떠 웃음이 절로 나오고, 초가을엔 단풍에 반해 휘파람이 나오고, 늦가을엔 낙엽에 취해 나도 모르게 진지해진다.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송년 산행은 꼭 필요한 여가이자 운동이다."
월간 '산' 한필석 기자
::: 모닥불 쬐며 이야기하기 딱 좋은 시기
"이맘때 자연휴양림을 찾아가면 모닥불을 피울 수 있게 해주는데, 불을 한가운데 두고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한겨울엔 그나마도 추워서 야외에서 모임을 갖기 힘든데, 지금은 적당히 춥고 또 적당히 따뜻한, 그야말로 마지막 나들이 계절이다."
숲 해설가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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