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기암에 반하고 2천년 마을역사에 놀라는 영암

운무가 만든 ‘천상의 섬’ 그 섬에 오르고 싶네
  • 등록 2010-03-10 오후 12:00:00

    수정 2010-03-10 오후 12:00:00

[경향닷컴 제공] ‘남도 답사 1번지’라고 하면 해남·강진을 떠올린다. 하나 인근 영암군 입장에선 조금 답답한 모양이다.

▲ 월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는 바로 구름다리다. 천황사 앞 북사면을 타고 1시간쯤 오르면 보이는 구름다리는 등산객들이 큰 탄성을 내지르는 곳이다. 사진은 사자봉 건너편 장군봉에서 본 구름다리 풍경.
현지 주민 왈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해남·강진만 치켜세워주고 영암은 별거 아닌 것같이 썼는데 여기도 참 좋단 말이오.” 월출산도 좋고, 2200년된 마을도 있단다. 게다가 요즘 싹을 한 뼘씩 내민 보리로 영암들판은 푸릇하고, 4월 첫 주면 섬진강변 하동 쌍계사와 마찬가지로 영암 거리도 벚꽃터널이 된다.

영암 하면 월출산이다. 신령스러운 바위 ‘영암(靈巖)’이란 말 자체가 월출산에서 나왔다. 월출산은 어디서 보면 좋을까?

문화유산해설사 전기홍씨(58)는 “서호면에서 보면 월출산이란 이름처럼 달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모정마을 이장 김창오씨(45)는 “모정지에 있는 원풍정에서 보면 달그림자가 그대로 비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선경 같다”고 했다. 김씨는 “월출은 6월이 가장 좋고, 일출은 12월이 좋아요. 보름에 맞춰 6월에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는 덕진면 선암리 차밭을 추천했다. “월출 풍광은 잘 모르겠지만 푸른 차밭을 배경으로 기암산이 불쑥 솟은 모습은 압권이랑께!”마을마다 월출산 풍경 보기 좋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월출산은 특이한 산이다. 서서히 산허리를 높여 큰 산을 이룬 게 아니라 논밭 한가운데 삼각뿔을 놓은 형국이다. 산이 엎드려 있는 게 아니라 꼿꼿하게 서 있다. 전체가 바윗덩어리고 기암이다. 면적(56만㎢)은 작아도 국립공원이 지정된 것도 이렇게 특이한 지형 때문이다. 하지만 짓궂은 봄날씨로 주야로 안개비가 내려 들판에서도 볼 수 있는 월출산이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다. 어쨌든 산에서 보는 월출산과 들에서 보는 월출산은 다르다.

들에서는 산세를 읽고, 산에서는 기암을 본다. 그럼 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는? 구름다리다. 천황사 앞에서 북사면을 타고 1시간쯤 오르면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월출산 국립공원 조용준씨는 “산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딱 여기까지는 올라와 보고 간다”고 했다. 안개비가 그치고 잠깐 암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붉은빛을 띠었는데…, 과연 장관이다. 암벽 사이로 실줄기 같은 물줄기 바람폭포가 흘러내렸다. 과천에서 왔다는 60대 남성은 “호남의 소금강이란 말 그대로다”라고 했다.

월출산 구름다리는 전국에서 가장 풍경 좋은 구름다리 중 하나다. 호남에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유명한 구름다리가 세 곳 있는데, 강천산 구름다리는 계곡이 평지길이라 찾기 쉽고, 완주 대둔산 구름다리는 케이블카로 갈 수 있다. 월출산은 발품을 팔아야만 볼 수 있는 구름다리여서 불편하고 힘들다.

그래도 한 번 보면 “와~”한단다. 1978년 산악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만들었고, 2005년 새 다리로 교체했다. 웬만한 산은 요즘 한참 산불방지 기간인데 월출산은 등산로가 대부분 열려 있다. 3월부터 봄산행객들이 밀려오는데 해마다 25만명 정도 왔다 간다. 지난해 ‘1박2일’에 구름다리가 나온 뒤 30만명이 다녀갔다. 사자봉 건너편 장군봉에서 본 구름다리 풍광도 좋다.

마을 구경도 재밌다. 구림마을은 바로 왕인박사가 일본에 천자문을 건네기 위해 떠난 곳이고, 도선국사가 버려졌을 때 비둘기들이 감싸안았다는 탯자리다. 마을 한복판 잘생긴 소나무 사이에 회사정이란 아름다운 정자가 있고, 인근엔 도선국사가 버려졌다는 국사암도 있었다. “2200년 전 서호면 서호강을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됐죠. 그리고 1000년 전만 해도 영암에 국제항이 4개가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만큼 번성한 고을이었제.”

해설사 전씨는 “한석봉이 온 아천포구,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간 상대포구, 충무공 이순신 일화가 있는 덕진포구, 영산강과 마주치는 남해포구 등이 있다”고 했다. 송시열, 박문수 같은 선비들이 많이 찾은 명승지였다는 것이다. 영암 독천시장은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팔던 곳이기도 하고….

그런데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고택보다는 최근 새로 지은 한옥이 대부분이다. “군에선 한옥 스테이 같은 것도 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돈 좀 빌려줬겠죠. 하지만 잘 안됐어요. 군청에선 예약률 80%라고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죠. 이 마을 사람들이 민박집이라고 찾아와 여자들이 짧은 옷 입고 왔다갔다 하는 거 별로 안좋아 해요. 전화 받으면 예약 다 찼다고 해버리니까. 어른들이 가래침 뱉으며 행세하는 재미로 살아가는 마을이죠.”(전갑홍)

고려 공신 최지몽 후손인 낭주 최씨, 기생 홍랑과의 로맨스로 이름난 문장가 최경창의 후손 해주 최씨, 간죽정을 세우고 후학을 가르쳤던 박성건의 후손 함양 박씨, 임진왜란때 충무공 이순신에게 군비를 댔다는 현건의 후손 연주 현씨(현정은 회장의 종가) 등이 마을의 터줏대감들이란다. 강원도 관찰사, 담양부사를 지냈으나 당쟁을 떠나 낙향했던 임억령 형제들도 이 마을에 살았단다. 그나저나 왕인박사가 떠났다는 상대포구는 연못 하나에 정자 하나만 덜렁 서 있다.

여기가 무슨 국제항이었을까 상상도 안된다. “영암은 450년 전부터 간척사업을 했고, 일제 말인 70년 전쯤 논밭으로 변해서 그래요.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독천 낙지도 갯벌에서 났는데 요즘은 무안에서 사오거든요. 80년대 초반 막은 영산강 방조제를 지금 없애자는 얘기가 요즘 나와요. 3년이면 뻘(갯벌)이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방조제 생기고 뻘 메워서 논밭 만들었거든요. 뻘이 살아나면 영암이 훨씬 좋아지제.”전씨는 영산강변에 “시종, 도포, 군서, 서호, 학산, 미암, 삼호면 등 7개 면이 접해 있다”고 했다.

모정마을 원풍정에서 내려다본 모정지 풍경도 좋다. 500년 가까이 된 저수지 귀퉁이에 원래 440년 전에 세워진 쌍취정이란 정자가 160년 전까지 있었다고 했다. 임씨 집안에서 지은 정자다. 지금은 1934년에 새로 지은 원풍정만 있다. “1722년 담헌 이하곤 선생이 월출산을 등반하며 남긴 기록에 쌍취정이 나와요. 모정지 주변에 1만그루의 버드나무가 싶어져 있고, 방문을 열면 월출산의 푸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 그런데 버드나무는 다 베어버리고 없거든요.”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담양의 식영정과 1년 차이로 지어졌단다. 어쨌든 마을 사람들은 쌍취정도 복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영암에선 산에 반하고, 마을 역사에 놀란다. 봄볕같이 참 따뜻한 마을이다.

450년 이어온 구림마을 대동계

▲ 회사정
구림마을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중 하나는 회사정(사진)과 대동계사다. 두 건축물은 이 마을 대동계에 관한 것들이다.

구림마을 대동계는 450년을 이어왔다. 대동계는 예를 보급하고 향촌사회의 단결을 위해 만든 향약으로 일종의 향촌자치규약이다. 향약은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어려운 일은 도와준다는 마을 운동으로 퇴계와 율곡 등이 중국의 여씨향약을 권장하면서 시작됐다. 16세기에는 사림파의 개혁가 조광조 등이 훈구파들이 장악하고 있던 경재소, 유향소 등을 철폐하는 대신에 중소지주층 중심의 향약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 마을 대동계는 이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낭주 최씨 문중의 왕인학당 훈장 최기욱씨는 “전라도에서는 전북 김제시 시산리에서 향약이 처음 시작됐지만 홍주목사를 지낸 임구령 선생 등이 향약의 필요성을 알렸고, 그 후 대동계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현재 회원은 80명. 회사정은 조정에서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등 공식행사를 진행했던 장소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데다 주변에 아름드리 노송들이 있어 경관이 좋다. 기둥을 놓은 주춧돌에도 장식을 할 정도로 공을 들인 건축물이다. 회사정 앞에 있는 비석은 과거 말썽을 부린 사람을 묶어놓고 매질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대동계사는 대동계 소유의 건축물로 단체 민박도 할 수 있다. 



▶여행길잡이

*호남고속도로 서광주 톨게이트를 나와 산월IC로 빠진다. 외곽도로(통행료 1000원)를 타고 달리다 나주·영암 방면 13번 국도만 보고 가면 된다. 영산포를 거쳐 영암으로 이어진다. 광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20~30분에 한 대꼴로 영암행 버스가 다닌다. 영암에서 월출산까지는 하루에 버스 5대가 다닌다. 영암읍내에서는 택시로 5000원 정도. KTX로는 나주나 목포까지 간 다음, 역에서 택시로 3만원 정도.

*구름다리로 가려면 천황사지구에서 출발해야 한다. 구름다리까지는 1시간, 구름다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30분 걸린다. 왕복 4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도갑사 일주 코스는 6시간. 가장 빠른 코스는 경포대 코스다. 주차료는 4000원, 4~5월 성수기는 5000원이다. 입장료는 없다. http://wolchul.knps.or.kr (061)473-5210

*모정마을 월인당은 전통 한옥이다. 장작을 땐다. 고구마도 구워준다. 10만~15만원. www.moonprint.co.kr (061)471-7675. 월출산 호텔은 온천욕도 즐길 수 있다. www.wolchulspa.co.kr (061)473-6311. 소프트모텔은 모텔급으로 시설이 좋은 편이라고. (061)471-8101 구림마을 민박 http://ygurim.namdominbak.go.kr

*낙지가 유명한데 산낙지, 갈낙탕으로 많이 해먹는다. 요즘에는 산낙지와 육회를 섞은 육낙도 현지에서 유행이라고. 짱뚱어탕도 유명하다. 군청 앞 ‘중원회관’이 잘한다. (061)473-6700.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팔던 곳이라는 독천시장 내에는 30여개의 낙지식당이 있다. 갈낙탕, 낙지꼬치구이, 산낙지 등을 맛볼 수 있다. ‘청하식당’(061)473-6993, ‘독천식당’(061)472-4222. ‘월출산 초갈비’는 불고기 백반집(061)471-2800. ‘도갑사 가는 길’은 닭요리전문점. (061)471-1030

*4월3일부터 6일까지 왕인문화제를 연다. 이 즈음 벚꽃도 만개한다. 일제 때 심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꽃터널을 이룬다.

*4월부터 월출산 국립공원에서 생태탐방도 실시한다. 환경부에서 1일 6000원, 1박2일은 2만원 안팎을 지원해준다. 농촌체험과 구름다리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1일 코스는 6000~7000원. 야생화 가이드는 무료. visit.knps.or.kr/예약서비스/생태탐방(061)473-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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