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정은 ‘거기 202217’(2022 사진=갤러리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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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림이 슬픈 건가. 닭똥 같은 물감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흐르다가 멈추고 엉키고 다시 흐르고. 울음으로 따지자면 통곡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시각을 좀 멀리 두면 정반대의 장면이다. 이처럼 유쾌한 난장이 또 없는 거다. 물감이 ‘댄스의 본능’으로 요동치고 있으니. 새봄의 생명력이라고 할까. 흩날리는 꽃잎도 잡아야 하고, 삐져나오는 새싹도 보듬어야 하고, 탄력이 생긴 물길도 내줘야 하고. 어느 하나 얌전히 멈춰 서 있는 게 없다.
작가 이이정은(46)이 캔버스에 두툼하게 담아두는 게 바로 그거다. “저마다 자유로이 살아 있는 모든 것.” 구름을 움직이는 하늘, 무심하게 사라지는 무지개, 자연을 통째 움직이는 바람까지, 직접 접하고 ‘이거다!’ 했던 ‘경험의 자연’을 용감하게 짜낸 물감과 과감하게 휘두른 붓질로 꺼내놓는 거다.
계기가 있단다. ‘버린 세상’이던 폐광촌이 자연의 끈질긴 소생력에 힘입어 결국 치유되는 것을 목격하면서란다. 그 강한 생명력을 작가 나름대로 극대화한 것이 입체에 가까운 독특한 붓터치였던 거다. 이성으로 따져보면 추상이지만 감성으로 따져보면 구상이다. ‘거기 202217’(2022)처럼 안 읽히는 구석이 없단 얘기다.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진선서 유정현·노현우와 여는 3인 기획전 ‘꾸밈없어 더 마땅한’(Nature Itself)에서 볼 수 있다. 작가마다 달리 경험한 자연의 에너지를 장기와 개성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걸었다. 캔버스에 오일. 145.5×112.1㎝. 갤러리진선 제공.
| 유정현 ‘이어지지 않는’(Discontinuous15·2023),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사진=갤러리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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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현우 ‘No.125 PM0913 12° 25.AUG.2019(2023), 캔버스에 오일, 145×55㎝(사진=갤러리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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