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상식을 깨라]②기회는 올 것인가

정크가 살아야 크레딧이 산다
  • 등록 2011-02-11 오전 9:10:05

    수정 2011-02-11 오전 9:10:05

마켓in | 이 기사는 02월 11일 08시 31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해외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은 2010년 정크본드 발행이 287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은행권 대출에 의존적인 유럽에서도 회사채 발행이 역대 최대에 달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회사채에서 정크본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24.4%에 달했다. 투기등급 채권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 것이다. 이런 미국도 2008년엔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영향에 정크본드 비중이 1%로 급감하기도 했지만, 이내 빠르게 회복되며 지난해 4월엔 38%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정크본드가 각광받는 이유는 높은 수익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부도율(디폴트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보다 안전하게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JP모간에 따르면 2010년 미국 정크본드 수익률은 15%를 기록, 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기업의 디폴트율은 사상 최저수준을 보였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 정크등급 기업의 디폴트율을 기존 5.5%에서 2.4%로 하향조정하기도 했다.

은행권을 통한 간접 자금조달이 주류를 이루는 유럽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2010년 유럽기업들이 발행한 정크본드는 510억유로(684억달러)로 정크본드 발행이 가장 많았던 2006년보다 75%나 급증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유럽 기업들이 기존 방식(대출)에서 벗어나 저금리시대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투자자 요구에 따라 회사채 발행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낮은 수준의 경제성장률과 중앙은행들의 완화정책이 지속되면서 고수익 고위험 자산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유럽과 미국 등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발행된 정크본드 규모는 3580억달러(11월 기준)로 전년대비 40% 이상 늘었다. 골드만삭스는 2011년 글로벌 채권전망에서 “B등급 정크본드 채권이 새로운 스위트스팟에 있다”며 “수익-위험간 최상의 균형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JP모간체이스는 2011년 CCC등급 회사채에 대해 `비중확대` 의견을 내놨다.

시장 인프라 시급

이처럼 해외에서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인식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정크본드, 하이일드본드가 자리잡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뭘까. 삼성경제연구소는 회사채 발행 및 수요의 전반적 축소와 은행 대출에 비해 낮은 경쟁력, 시장인프라 미비를 꼽았다.

길기모 신한금융투자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정크본드뿐 아니라 국내 회사채 시장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시장을 만드는 마켓메이커가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라고 했다. 그는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공급해주고, 팔고자하는 수요가 있을 때 받아주는 마켓메이커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증권사나 투자은행 등이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 회사채 시장규모가 크지 않고, 유통도 활발하지 않아 유동성 리스크가 더해지고 있다.

또 정크본드 발행 및 투자 활성화를 위해 선행돼야 할 정확하고 합리적인 가격산정이 미흡한 것도 큰 문제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도율과 회수율 등 채권 가격 결정을 위한 기초자료 축적이 충분치 않다”며 “투자자들은 기업신용등급에 따른 부도율 추이에 대해 신뢰감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정크본드는 경기 위축이나 신용경색시 부도율이 크게 높아지는 만큼 신용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CDS 등 신용파생상품 시장이 함께 확대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신용파생상품 거래규모는 미미하다. 이밖에도 운용사의 제한적 한도설정, 하이일드에 대한 가이드라인 상향조정, 디폴트 이후 처리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용평가사에 대한 신뢰도와 등급 인플레이션 문제도 주요인으로 보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등급 인플레이션이 심해 등급 자체에 대한 믿음이 떨어진다. 이런 기업도 A이면, 고수익채권(정크본드)은 대체 어떤 기업이냐 이런 생각을 한다”며 “기업과 신평사간 역학관계에서 신평사가 밀리는 면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무디스, S&P와 같은 글로벌 신평사들은 워낙 파워가 있어, 그 신평사에서 레이팅을 받지 못하면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지만 국내 현실은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기회는 올 것인가 국내에서도 최근 크레딧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얼라이언스번스틴이 2009년 6월 설정한 AB글로벌고수익투자신탁의 경우 2년이 채 안 됐지만 8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몰렸다. 특히 이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감안하면 국내에서도 정크본드, 하이일드본드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 하다.

이연승 얼라이언스번스틴 이사는 “글로벌 고수익 채권을 주된 투자대상으로 한 이 펀드는 국내 출시된 하이일드 펀드중 가장 많은 자금이 몰렸고, 지금도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펀드의 경우 지난해 11월 기준 고수익채권(정크본드) 비중이 53%에 달한다. 신용등급별로 BBB 17%, BB 19%, B 33% 등이고, CCC 이하도 21%나 된다. A 이상은 전체 투자자산의 9%에 불과하다. 이 펀드의 6개월과 1년수익률은 각각 10.43%, 15.93%이며, 설정일 이후 누적수익률은 38.76%에 달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회사채 시장 전반적으로 장기, 고수익(하이일드)채권의 수요기반 확충이 필요하다”며 “주식시장과 함께 자본시장의 한 축으로 채권시장이 역할을 하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회사채 펀드 활성화 등 정책을 펼 정도면, 아직까지 회사채시장에 문제가 많다는 반증”이라며 “시장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발전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2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2호 마켓in은 2011년 2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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