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읽어주는 남자]`현금 부자` 삼성전자가 단기대출 쓰는 이유

매출채권 담보로 6조 단기 대출 받아…"환헤지용 매입외환"
회사채 650억, 20년 분할상환…"채권 신용등급 유지 목적"
  • 등록 2015-10-04 오후 12:35:44

    수정 2015-10-04 오후 12:35:44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삼성전자(005930)는 대표적인 현금 부자 기업으로 꼽힙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국내 150대 대기업을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와 현대차만 최근 5년간 순현금 보유량이 늘고 나머지 기업들은 순차입금이 4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조 6000억원(개별 재무제표 기준)인데, 1조 6400억원을 기록한 작년 말보다 6개월새 2조원이 늘었지요.

삼성전자의 부채비율은 올해 상반기 개별 재무제표 기준 22.4%로 매우 양호한 모습을 보입니다. 보통 부채비율이 100% 근처만 돼도 양호하다고 보는데, 삼성전자는 빚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이지요.

그나마 쓴다는 부채도 대부분이 원자재를 외상으로 산 매입채무이거나 기계장치 등 유형자산을 살 때 중도금·잔금으로 주지 않은 미지급금, 아직 납부하지 않은 직원 월급이나 전기세, 수도세 같은 미지급 비용, 납부하지 않은 세금인 미지급 법인세, 직원 퇴직금 줄 돈으로 쌓아 둔 충당부채들이니 ‘대출인 듯 대출 아닌 대출 같은 부채’만 갖고 있지요.

그런 삼성전자에도 6조원 규모의 단기 차입금이 있는 것이 의아합니다. 단기차입금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고금리 대출로 유동성이 나빠진 기업들이 주로 단기 차입금으로 자금을 구해오지요. 물론 삼성전자는 전체 부채에서 19.9%만이 단기차입금이긴 하지만, 현금도 많은 데 굳이 단기차입금을 빌려 온 이유가 뭘까요?

△자료 : 2015년 상반기말 개별 재무제표 기준
삼성전자의 단기차입금은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으로부터 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측에선 이렇게 단기 대출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만, 은행권에 수소문해보니 이는 대부분 수출기업이 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매입외환(bills bought)라고 합니다.

은행은 수출환어음을 사들이면서 수출업체에 외국 수입업체 대신 돈을 미리 지급합니다. 이 돈은 나중에 수입업체로 부터 받지요. 수출업체인 삼성전자에는 일정 기간 빌려주는 형식이라 대출로 잡힙니다. 금리는 리보(LIBOR·런던 은행간 적용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정해지는 수준이라 매우 낮다고 합니다. 낮은 이자율로 환율 변동 위험을 은행에 떠넘길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선 보약이 되는 대출이겠네요.

또 하나 부채다운 부채로 장기 차입금 중 사채라는 항목이 눈에 띕니다. 사채는 명동 사채업자에게서 빌린 살인적인 금리의 사채가 아니라 회사채를 말합니다.

삼성전자의 회사채도 독특한 것이 1억달러(우리 돈 약 118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1997년에 빌렸는데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매년 50억~60억원 가량씩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말 기준으로는 650억원의 잔액이 남아 있지요. 이는 삼성전자도 과거 외환위기 당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탓에 받아 놓은 거라고 합니다.

보유 현금도 많으니 몽땅 갚아버려도 될 텐데 이를 갚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신용평가사들에 수소문해보니 회사채 발행량이 있어야 채권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삼성전자는 돈이 급해 부채를 쓰지 않습니다. 위험을 헤지하거나 신용 좋은 회사라고 증명하기 위해서 씁니다. 다가오는 채권 만기일에 가슴을 졸여야 하는 한계기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이 보면 삼성은 참 부러운 회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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