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신당동 동대문 도매시장. 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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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안녕하세요. 링크샵스요. 세 장 다 됐죠?”
“응~ 삼촌 이건 샘플~”
30일 새벽 1시 동대문 패션 도매시장을 누비는 한 청년 황정호(27)씨. 시장에선 그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소매업체가 주문한 물건을 대신 구매해 주는 황 씨는 ‘사입삼촌’이다. 황씨는 바빴다. 쇼핑몰 전체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오르고 내렸다. “시간이 없어요.” 바쁘게 뛰어다니는 이유는 그게 전부다.
| ‘사입삼촌’ 황정호(27)씨가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기다리고 있다. 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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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입삼촌들에겐 시간이 곧 바이어와의 ‘신뢰’다. 주문마감→상품픽업→검품 주문내역 확인→배송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황 씨는 상품픽업을 담당하고 있다. 운동화에 반바지, 티셔츠 차림에 한 손엔 주문대장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엔 의류가 든 비닐봉지를 들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4층도 한 바퀴 돌 건데 같이 도실래요?”
| 동대문 도매시장. 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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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 남짓한 가게들이 따닥따닥 줄지어 붙어 있다. “안녕하세요 유이요. 빨리 좀 해주세요. 지금 바로요” ‘유이’는 바이어명 또는 주문한 업체명이다. 단지 ‘유이요’라고만 말해도 도매상인이 알아서 해당 상품을 내준다. 그런데 이곳에선 다그쳤다. 이유가 있다. “여기는 바쁜 집이라 두 번씩 쪼아야 해요. 아니면 늦어요”
도매상인도 늦게 내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자정에 문을 여는 청평화시장. 공장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지게꾼’들이(이들은 정말 지게를 매고 다닌다) 옷 보따리를 싸 들고 도매업체에 물건을 내려주면 그제야 포장을 한다. 밤 12시에 문을 열어도 공장물건을 받아 상품을 분류해 포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황 씨가 도매상인에게 받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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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씨는 하나씩 가져온 물건을 쇼핑몰 밖 업계 간 구역을 정해놓은 어느 한 곳에 모아놨다. 그리곤 다시 가게를 돌아다니며 바이어 이름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라니오기요” “안녕하세요 제이에이이요” 아직 준비가 안됐다면 “다시 올게요. 빨리요”라고 한다. 이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면서 계단 중간엔 의류가 가득 모였다. 그걸 이제 큰 봉지에 쓸어 담았다. “이건 팔대봉이고요, 이건 별대봉이에요.” 별대봉이 가장 큰 봉지, 팔대봉은 그 보다 작은 봉지를 말한다.
황 씨의 동선엔 다 이유가 있다. 도매 쇼핑몰인 남평화, 유어스, 뉴존, APM 등은 이른바 ‘밤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은 보통 밤 8시에 오픈해 새벽 5시쯤 끝난다. ‘낮시장’인 청평화, 디오뜨, 테크노 쇼핑몰은 자정에 열어 정오까지 연다.
| 5톤 트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링크샵스’의 1톤 트럭이 쇼핑몰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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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운영 시간에 맞춰 동선을 짜고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새벽 4시반 부산, 경남지역으로 향하는 링크샵스의 5톤짜리 배송트럭에 물건을 실을 수 있다. 수량은 약 10만여 벌(수수료=구매금액의 3.3%). 황 씨 등 팀원 10여 명이 쇼핑몰을 나눠 맡아 쉴 틈 없이 뛰어야 채울 수 있는 물량이다.
“저희는 새벽 3시에 점심을 먹어요. 그런데 오늘은 좀 늦어져서 우선 일을 끝내고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 황 씨가 상품을 짊어지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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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그는 패션의류 쇼핑몰을 쉴 틈 없이 달렸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했다. 끼니도 거른 채 곧장 신발만을 파는 쇼핑몰로 향했다. 황 씨가 일주일에 쉴 수 있는 날은 단 하루. 밤낮이 바뀐 삶을 사는 그는 자신도 “동대문 쇼핑몰에 작은 가게 하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