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융이야기]화차 '경선'씨, 불법 채권 추심 이것만 알았다면

[금융부 막내기자와 함께 배우는 금융상식]
  • 등록 2015-05-02 오후 12:07:57

    수정 2015-05-02 오후 2:30:04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2012년 개봉된 영화 ‘화차’(火車)는 빚에 의해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극 중 ‘경선’은 부모님의 사채를 모두 끌어안게 되면서 쫓기는 삶을 삽니다. 그녀가 행복을 붙잡으려고 할 때마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사채를 갚으라는 독촉은, 그녀 자신을 화차(악인이 지옥으로 갈 때 타는 불수레)에 태워 살인마저 불사하게 합니다.

지난달 29일 금융감독원은 ‘제2의 경선’을 막기 위해 불법 채권 추심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으면 갚을 의무가 있죠. 그런데 갚지 않는다면 그것을 빨리 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을 채권추심업이라고 하는데 신용정보회사, 대부업체, 여신전문금융회사(카드사·캐피탈사) 등이 주로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빚을 무조건 받아낼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빚 받아낼 권리가 인권을 영위할 권리보다 우선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빚을 독촉할 때 지켜야 할 것을 법으로 마련해 ‘공정추심법’으로 명명했습니다. 또 금감원은 이와 별도로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를 꼭 지켜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경선 씨가 받았던 행위를 예로 들어 불법 추심행위에 대해서 알려 드릴 테니, 혹시 부당한 행위를 받거나 이런 행위로 고통을 겪는 분들이 있으면 꼭 신고하시길 바랍니다.

①채무자 외의 사람에게 채무를 갚을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애초 경선 씨는 빚을 갚을 의무가 없습니다. 왜냐면 빚을 진 것은 경선 씨의 아버지이지, 딸인 그녀가 아니거든요. 게다가 경선 씨는 이미 결혼을 해 별도의 가정을 꾸린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의무가 없습니다

극중에서는 경선 씨의 아버지가 행방불명이라 상속포기를 하려고 해도 5년이 지나지 않아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우리나라 법은 행방불명 기간이 5년이 지나면 법원에 실종선고 선고를 받아 사망한 것으로 간주합다. 이 때는 아버지의 재산과 부채도 같이 상속이 되는데 이 때 상속포기를 신청하면 재산도 부채도 함께 물려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때는 부채가 재산보다 많아야 합니다.

만약 경선 씨가 그동안 아버지의 채무를 갚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더 빚을 갚을 의무가 없다’고 말하면 추심행위는 중단해야 합니다. 이는 공정추심법이 정한 사항으로 법 위반 시 추심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혹은 채권추심업 허가를 취소’당할 수 있습니다.

영화 ‘화차’ 중
②예고 없는 방문은 안된다

마산 ‘등대 집’ 주인 아들과 결혼한 경선은 잠들던 도중 이불 속을 헤집는 기척에 잠을 깹니다. 그 기척의 주인공은 악덕 추심업자들.

그러나 이는 불법입니다. 추심인은 방문하기 전 방문계획을 전화, 우편 등을 통해 알리도록 의무화돼 있습니다. 또 혼인, 장례, 입학, 졸업 혹은 지인이 위독할 때 등 채무자가 곤란한 상황에 방문하는 것도 안 됩니다.

③가족·직장 등 제3자에 알려서는 안 된다

이는 제3자에게 채무자의 채무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관련돼 있습니다. 채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누군가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쑥불쑥 추심업자가 찾아다닌다면? 그 불안감은 커지겠죠. 아버지는 ‘행방불명’ 어머니는 ‘사망’, 혈혈단신으로 남은 경선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남편이었지만 경선이 계속 빚 독촉에 시달리자 시어머니는 화병이 나고 남편의 시선은 차가워집니다.

엽서, 팩스, 개봉 서신, 인터넷 등을 통해 제3자가 채무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게 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금감원은 또 채권추심업자가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제3자가 볼 수 있는, 혹은 채무자와 관계된 이를 볼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채무자와 접촉하는 것 역시 금지하고 있습니다.

영화 ‘화차’ 중
④신체포기각서는 법적효력이 없다

추심업자의 횡포에 견디지 못한 경선과 등대집 주인아들은 결국 이혼을 합니다. 이혼 후 터미널에 있던 경선에게 사채업자들은 억지로 서류에 지장을 찍게 합니다. “인생의 모든 길은 이제부터 나에게로 통하게 돼 있다”는 말과 함께요. 그러나 인권이 채권보다 우선되는 사회에서 이런 서류가 과연 법적 효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속칭 ‘카드깡’, 장기매매, 매춘 등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갚으라고 강요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또 돈을 갚기 위해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리거나 보험을 해지할 필요도 없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의복·침구·부엌기구 등을 매각해서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외에도 채권 추심에서 지켜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⑤문자·전화는 최대 하루 3회

전화,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한 추심 역시 무한정 허락되는 것은 아닙니다. 금감원은 추심업자의 추심행위를 하루 3회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루 3회’는 법적인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금감원 등에 신고하면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금감원은 민원이 많은 추심업체를 중심으로 오는 2분기부터 4분기까지 특별검사를 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추심횟수가 지나치다고 판단되거나 야간에 전화하면 공정추심법 위반,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죽은 동물의 사체, 폭력적인 소설·음향·영상물을 보내는 행위 역시 금지됩니다.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정해 추심업자와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채권추심업자는 채무자로부터 채무대리인을 선임했다는 서면통지를 받은 순간, 채무와 관련해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전화, 우편, 음향, 영상, 물건 등을 보내는 것이 금지됩니다. 만약 규정을 위반하고 채무자와 직접 접촉하면 채권추심업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됩니다.

다만 채무대리인 제도는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아 채무조정(개인회생, 워크아웃, 파산 등)을 진행하고 있는 채무자에게 적용됩니다. 게다가 서울시와 성남시에서만 변호사 선임예산을 지원한다는 점도 애로사항으로 꼽힙니다.

이처럼 물론 법이 현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울 때’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멀게만 보이는 법이라도 적극적으로 찾아서 권리를 쟁취하면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금감원은 5대 금융악(惡) 신문고(국번없이 1332)를 통해 접수되는 채권추심과 관련된 민원 중 불법 혐의가 짙은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할 예정입니다. 또 채무자가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즉시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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