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문주용·조용만·김기성기자] 정권교체기에 대응, 재계가 갖가지 미래 전략으로 응수하고 있다. 레임덕(권력 누수기)을 틈타 SK, 롯데 등은 기업인수에 손발을 뻗치며 재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 또 현대차 등은 신규사업 진출에 나서는 한편 후계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반대로 삼성, LG등은 본업 챙기기와 내실다지기 등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낫다며 민감한 시대에 맞춘 "관록있는" 대응전략을 펴고 있다.
통상 정권교체기는 시점과 정치권 역학관계의 미묘함 때문에 레임덕이 발생, 재벌정책에 관한한 공백기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 현정권이 최근 "홍삼트리오"로 불리는 대통령 아들비리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자 일부 그룹들은 공백기를 적극 활용하는 미래전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삼성, 잘나갈때 미래 대비하자..내실다지기= 요즘 삼성의 경영자세는 "잘 나갈수록 미래에 대한 대비를 더욱 철저히 하자"다. 이건희 회장이 5~10년후를 대비하도록 지시, ▲초일류기업 ▲정도경영 ▲핵심인력 육성 등 구체적인 전략을 갖춰가고 있다.
내실다지기 전략은 최근들어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가 사상최고의 분기실적을 발표한 지난 4월19일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2010년까지 전자부문을 세계 `톱 3`에 진입시킨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어 금융계열 사장단 회의에서는 `초일류기업`을 위한 정도경영과 고객만족을 강조했다.
특히 지난주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사장단은 우수인재에 대해 국적불문의 채용방침을 빍히는 등 핵심인력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키로 한 바 있다.
삼성은 반대로 외형성장이나 신규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KT민영화의 경우 이건희 회장은 "우리일도 바쁘다"며 불참방침을 밝혔고 금융계열사를 통한 소극적 입찰참여는 SKT의 막판 뒤집기로 무산됐다. 하이닉스인수 요청이나 자동차 사업 재진출설을 극구 부인, "아직은 외형성장에 나설 때가 아니다"는 판단에 따라 신중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삼성의 5~10년후 구상과 내실다지기에 대해 재계 일각에선 포스트 이건희, 즉 이재용 체제로의 개편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불거질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외형보다는 내실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LG, 통신업 재정비..구씨 허씨 분가도=LG는 정권교체기 전략을 따로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지난 2000년부터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 지주회사 체제를 준비해왔고 내년에는 전자, 화학 계열의 양대 지주회사까지 통합시킴으로써 지주회사체제를 완결시키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큰 그림아래 작은 움직임들은 역시 정권교체기의 전략과 무관치 않다. 신규사업에 대한 도전의지는 강하지 않지만 내실다지기로 그룹의 가장 큰 골치거리 사업인 통신서비스업의 재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데이콤이 파워콤 민영화에 뛰어든 것은 새로운 사업에 대한 진출이라기 보다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그룹의 통신사업에 대한 재정비로 해석된다. 파워콤을 인수할 경우 겨우 흑자전환의 발판을 마련한 데이콤은 미래 핵심사업을 "마음먹은대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또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2강(强)에 눌려 있는 LG텔레콤도 큰 도움을 얻게 될 전망이다. LG는 정부가 바라고 있는 3강구도 구축을 위해 데이콤의 파워콤 인수 명분이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만일 데이콤이 파워콤인수에 성공할 경우 파워콤, 데이콤, LG텔레콤, 그리고 IMT-2000사업자 등 4개 사업자를 주축으로 해 다시한번 SK, KT의 아성에 도전하는 기회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그룹의 가장 근본적인 현안인 구씨. 허씨 창업주 일가의 분가작업도 이 정권교체기를 활용, 해소하고 넘어갈 요량이다. 결별이지만 80여년동안 창업동지 관계를 유지해온 아름다운 전통 덕에 분가에 대한 여론부담도 없는 편이다. 하지만 분가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복잡 미묘한 주식거래는 외부 소액주주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정부의 견제가 약화된 지금이 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적기인 셈이다. LG는 차기정권 초기인 내년말까지 분가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LG는 그룹차원이 아닌 LG칼텍스정유 차원에서 가스공사 민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연내 민영화하겠다는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현정권내 민영화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SK, 이 때를 기다렸다..또다시 확장경영=SK는 마치 정권교체기를 기다린 듯한 모습이다. 예년에 볼수 없는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 연초 다른 그룹들이 신중한 사업계획을 마련할 때 SK는 공격적인 경영계획으로 다른 그룹을 압도했다. 그렇지만 실제 사업계획에는 눈을 끌만한 투자계획이 없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SK는 최근 KT 민영화에서 공격성을 과시했다. "물의"를 빚으면서도 1조6000억원을 들여 KT지분 11.34%를 기습 인수, 재계를 놀라게 했다. 또 최근에는 전북은행과 신용카드 사업을 함께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금융사업 확대의지를 노골화했다.
이와 함께 가스공사및 한전 발전자회사 민영화에도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보였다. 가스공사의 경우 해외 유력 석유화학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SK의 "공격앞으로"는 정권교체기마다 나타나는 단골메뉴다. 섬유사업을 영위하던 SK는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던 때도 지난 80년 신군부가 막 집권했던 시기다. 또 92년 정권교체기 때에는 제2이동통신자 선정을 위해 나섰다가 정치권의 반대로 물러서는 듯했다가 94년 끝내 한국이동통신(현재의 SKT)을 인수, "한번 물면 놓지않는" 대단한 집착을 과시했다. 이 두개 사업의 인수가 SK그룹의 비약에 결정적 계기가 됐던 만큼 정권교체기의 SK 전략은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라는 생각인듯하다.
재계 관계자는 "SK가 KT지분을 오버행 때문에 매입했을 것으로 믿지 못하는
이유는 정권교체기마다 기업인수에 나서는 모습때문"이라며 "KT 지분인수 역시 경영권 인수를 통해 다시한번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번의 공경경영은 핵심수종사업을 확보하려던 과거 목적과는 달리 올연말 완료를 목표로 한 최태원 회장 후계작업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차, 몸집 불리기+ 후계작업 시작=현대자동차그룹은 자동차 관련 사업으로 몸집을 불리는 동시에 정권교체기의 공백을 틈타 변칙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후계승계작업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유럽계 해운회사인 왈레니우스-웰헬름센(WLL)사와 합작법인을 설립, 현대상선의 자동차 운송사업부문을 공동 인수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사업범위는 자동차 및 철강 제조에서 자동차 해외운송 부문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신설법인에 지분 20% 이하 수준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 이번주내에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자동차 전장업체인 본텍(옛 기아전자)을 흡수 합병할 예정이다. 자동차 부품업체로 변신한 현대모비스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후계승계작업의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다.
본텍이 현대모비스에 흡수 합병되면 정몽구 현대·기아차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전무가 갖고 있는 본텍 30% 지분는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1~2%)로 바뀐다.
이를 통해 정전무는 투자자산 15억원을 불과 7개월만에 200억원 이상으로 늘리는 이익을 챙기게 된다. 이 때문에 세법상 의제증여의 소지가 있는 등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정면으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모비스측은 자동차부품의 핵심부문인 전장사업 강화차원에서 본텍의 흡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합병으로 재벌총수 2세의 투자자산 가치가 수십배로 늘어나는 동시에 공개시장을 통하지 않고 지주회사의 지분을 손쉽게 획득하는 변칙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밖에도 현대차그룹은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몽구회장의 옛 계열사인 고려산업개발 인수설에도 나오는 등 대규모의 현금 동원능력에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인수주체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현대차는 또 미국 현지에서 석박사 100~200명을 채용키로 하고 내년에는 유럽 등을 확대, 글로벌인재 확보에 나서겠다고 밝혀 삼성을 뒤따르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롯데, 공격 경영의 새내기 주자=SK가 정권교체기마다 단골손님이라면 롯데
는 정권교체기의 새내기 손님이다. 물론 지난 문민정부시절 초기에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위해 분주하게 뛴 적이 있지만 성사시키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롯데는 IMF를 겪으면서도 마르지 않은 "화수분" 같은 현금동원력을 바탕으로 유통업체에서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있다.
롯데는 미도파매각 입찰에 참여해 5800억원의 가격조건을 제시한 끝에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이어 지난달에는 국내 1위 패밀리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즈를 501억원에 인수키로 해 "유통지존"의 꿈을 불태우고 있다. 카드사업 진출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을 통해 지난해부터 현대석유화학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의 공격 경영에는 신동빈 부회장이 정점에서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더욱 눈길을 모이고 있다.
◇한화, 두산, 금호등도 움직임 활발=어느덧 재계 6위로 올라선 한화는 약해진 공권력에 맞서 대한생명 인수를 위한 막판 총력전을 다하고 있다. 2년간 공들여온 대생인수에 성공할 경우 한화는 종전 화학 등 제조업에서 금융·서비스업으로 사업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한화는 그러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로부터 입찰참여 자격시비까지 받은데 이어 매각가격의 잦은 변경으로 곤혹을 치르며 이같은 미래전략을 현실화시키는데 애로를 겪고 있다.
두산은 두산중공업을 인수해 중공업 기반을 확고히 한데 이어 한전기공, 한전기술 인수에까지 뛰어들어 중공업 중심 그룹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현 정권중반까지 구조조정을 착실히 한 결과 정권교체기에 새로운 미래전략을 구사할 힘을 갖게 됐다. 반면 구조조정이 늦은 금호의 경우 금호타이어 등의 매각을 통해 그룹 구조조정을 연내에 완료하는 등 당장에 급한 내실다지기에 매진하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