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발포 명령자 규명 실패…‘증거부족·부실조사’ 지적

5·18진상규명위, 작년 말 4년 간 활동 마무리 후
2월 29일 ‘개별조사결과보고서’ 공개
실무진, 당시 출동 병력 2867명 조사
집단 발포 전두환 주도적 역할 판단
전원위원회 '증거부족'으로 인정 불가
  • 등록 2024-03-02 오전 11:00:50

    수정 2024-03-02 오전 11:00:50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최우선 과제인 발포 명령자를 찾아내는 작업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실무진은 고(故) 전두환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냈지만 전원위원회는 그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광주에 파견된 군부대들.(출처=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공개한 진상규명 불능사유와 소수의견 등이 담긴 ‘개별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위는 당시 출동한 병사와 지휘관 등 2만404명 중 2867명을 조사했다. 일반 병사부터 지휘관으로 올라가는 상향식 조사 방식을 활용했다.

조사위는 이를 통해 계엄군 총격은 최소 50곳 이상의 장소에서 이뤄졌으며 사망자 166명 가운데 80%에 달하는 134명이 총상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600여명의 부상자 중 약 20%도 총상으로 조사됐다.

특히 실무진은 집단 발포 등 작전 상황은 전두환의 주도적인 역할이 인정된다고 결론 냈다. 주요 근거로는 당시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 활용됐다. 조사위는 ‘전두환이 광주에 출동한 하나회 소속 장교들과 직접 소통했다’라거나 ‘전두환 허락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발포는 문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전두환의 지시라고 봐야 한다’ 등의 증언을 확보했다.

또 전씨가 항쟁이 한창이던 5월 24일 언론사 편집부장 간담회에서 “무기 반납을 이틀 정도 더 기다렸다가 무산되면 필요한 조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 이틀 뒤인 26일 계엄군은 5·18 최후 진압 작전(재진입 작전)을 개시하고 다음 날 새벽 작전을 실행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전원위원회는 이 같은 실무진 조사에 대해 ‘부실 조사’, ‘검증 부재’ 등을 이유로 인정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진술의 신빙성이 문제시 됐다. 군인들의 진술을 편의에 따라 무작위로 인용하거나 이미 입증된 내용을 부인하고,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진술조차도 비판 없이 인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발포 명령자 규명과 함께 주요 과제로 꼽히는 암매장 의혹도 사실을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조사위는 암매장 추정지로 제보된 현장 21곳을 조사해 9구의 무연고 유골을 발굴했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5·18 행방불명자와 일치하는 경우는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에서 우연히 발굴된 유해 262구 역시 5·18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조사위는 암매장된 다수의 시체가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지속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일부 조사위원들은 암매장, 가매장, 방치 등 매장 유형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암매장으로 섣불리 판단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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