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오늘은 토레스 델 파이네(파이네의 탑) 일일 트레킹을 하는 날.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하게 맑다. 파이네 3봉도 저 멀리 선명히 보인다.
| 사진 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3봉. 사진=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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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캠프 파타고니아에서 파이네 3봉까지는 왕복 8시간정도 걸리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하지만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백미’인 토레스 델 파이네를 가까이 보지 않고선 내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트레킹을 가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온 남미인데, 어떻게 온 파타고니아인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한 우리는 이른 아침을 먹고 트레킹 채비를 했다. 8시간이 걸리는 산행이라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도 직접 쌌다. 호텔에서는 트레킹 숙박객을 위해 샌드위치 재료들을 늘어놓고, 취향껏 넣어 포장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사실 이 샌드위치 가격도 풀보드 식사에 포함됐으리라….)
가이드 3명에 숙박객 등 20명 남짓한 인원은 토레스 델 파이네를 가까이 보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가이드 중 리더는 “오늘같은 날씨는 일주일에 단 1~1.5일에 불과하다”며 “당신들은 정말 행운아”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 빙하가 녹아 흐른 호수와 만년설로 덮힌 토레스델파이네 산맥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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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날씨는 쨍하게 맑고, 햇살은 빛났다. 분명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저 산 넘어 오른쪽(동쪽)에 토레스 델 파이네가 있는데 가이드는 자꾸 우리를 반대편인 서쪽(왼쪽)으로 걷게 한다. 길이 없어서겠지만, 그렇게 구비구비 돌아 토레스 델 파이네 속살을 하나하나 만나며 걷는다.
| 트레킹중에 만난 안내 표지판. 자연친화적이고 귀여워 보인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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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만년전 화강암으로 형성된 토레스 델 파이네(파이네의 탑)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곳들을 거쳤다. 우리나라처럼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 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 처음보는 이끼들이 나무를 차지한 습지, 이름 모를 빨간 꽃들과 빙하가 녹아 생긴 에메랄드 빛 호수가 조화를 이루는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까지….
| 오두막에서 바라본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풍경. 화강암과 푸른 숲이 대조를 이룬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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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세시간을 걷자 중간에 쉴 만한 오두막 같은 곳이 나왔다. 화장실도 가고, 목도 축이고, 간식도 먹는다. 화장실은 별도의 이용료를 내야 했다.
한 10여분 휴식을 취한 뒤 또 다시 걷는다. 날씨가 어떨지 몰라 파카에 바람막이까지 껴입고 걷자니 다소 더운 느낌도 든다.
| 하얀 눈 덮힌 산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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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걷자니 왼쪽엔 푸르른 나무들이 무성하고, 오른쪽엔 시커먼 점판암에 하얀 눈이 쌓여있다. 분명 기후는 비슷할 텐데 이렇게 대조적인 풍경이 펼쳐지니 신기하기만 하다.
| 돌무더기를 지나는 중에 저 멀리 토레스 델 파이네 3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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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고 또 걸으니 토레스 델 파이네의 꼭대기 부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화강암들이 무성히 쌓인 돌 산을 지그재그로 걸어 올라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토레스 델 파이네에 닿았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 4~5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에메랄드 빛 호수를 머금은 이곳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날아갈 것 같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11월인데도 바람이 차다. 다시 털 모자를 꺼내 쓰고, 옷을 여몄다.
| 파타고니아 백미 토레스 델 파이네서 점프샷. 안타깝게 끝부분이 잘렸다. 사진=가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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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보고싶던 토레스 델 파이네를 배경으로 점프샷도 찍고, 기념샷을 원없이 남겼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봤는지, 좀 익숙하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신비롭기 그지없고, 뒤에 우뚝 솟은 파이네의 3봉은 웅장하기만 하다. 단렌즈로 한 번에 담기엔 무리다.
| 에메랄드빛 호수와 파란하늘, 파이네 3봉이 조화롭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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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델 파이네엔 화강암으로 이뤄진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파이네그란데(가운데)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중 하나로 토레스 델 파이네를 꼽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파타고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임엔 틀림없다.
|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답게 바람이 무척 거셌다. 털모자에 장갑까지 완전 무장했다. 사진=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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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델 파이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불어오는 세찬 바람탓에 바위 아래 몸을 피할 수밖에 없다. 아침에 싼 샌드위치를 꺼내 먹는데 돌처럼 차갑다. 배가 고팠지만, 너무 차서 제대로 먹기 힘들다. 대충 절반정도 먹고 포기했다.
| 파이네의 탑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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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눈앞에 펼쳐진 토레스 델 파이네 풍경은 먹지 않아도 배부를 정도다. 역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득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다리가 벌써부터 후들거린다.
꿈같은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얼마쯤 지났을까. 가이드들이 우리를 불러모은다. 내려가는 건 3시간~3시간반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 내려오는 길에 만난 계곡과 푸른 나무들. 뒷쪽으로 화강암으로 이뤄진 산들이 자리한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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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이루고 내려오는 길은 길기만 하다. 신랑이랑 도란도란 얘기하고, 동영상도 찍고 했지만,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절반쯤 왔을까. 돌무더기가 있는 내리막길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긴바지를 입어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무릎이 아린 게 까진 듯 하다. 그래도 호텔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기에 기운을 내 걷는다.
| 다양한 풍경이 공존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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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와 동일한 코스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 그런지 또 새로운 풍경들이다. 내려올 때 만난 풍경들이 좀 더 여유있고 운치있게 다가오는 건 목적을 이룬 자의 여유인걸까?
| 빙하가 녹아 흐른 호수의 푸르름이 싱그럽다. 사진=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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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걷고 걸어 무사히 에코캠프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9시쯤 출발한 우리가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5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자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아직 저녁시간까지는 2시간정도 남았는데…. 다행히 우리에겐 푼타 아레나스에서 산 비싼 컵라면과 햄, 아스트랄 캔맥주가 있다.
순식간에 싹 해치우고 나니 피로감이 찾아왔다. 발에는 물집이 잡혔고, 무릎은 생채기가 났지만, 다시 생각해도 놀랍기만한 풍경이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잠시 잠을 청한 우리는 에코캠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먹고, 짐을 꾸렸다. 내일은 또 이동해야 한다. 칠레에 속한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아르헨티나에 속한 엘 칼라파테로 간다.
| 에코캠프 파타고니아의 자연친화적인 모습.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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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도착한 첫 날에 교통편을 묻던 우리에게 걱정말라던 지배인은 이제서야 다들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손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돌아갈 시간이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차편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신랑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무조건 칼라파테에 가는 차편을 구해달라고 했다 한다.
| 에코캠프 파타고니아 모습.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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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질 것 같은 에코캠프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쉽게 보낸다. 설령 남은 여생동안 남미를 다시 오더라도 여기를 또 오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온 게 다행이라고 위안해본다.
내일은 드디어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로 간다.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국경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이라 설렌다. 남극이나 북극이 아니어도 빙하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난 이때만해도 미처 몰랐다. 국경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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