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상봉에 기뻐하던 이산가족들은 이틀째 상봉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하룻밤만 자면 다시 기약없이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듯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이날 온정각 앞뜰에서 이뤄질 예정이던 야외상봉은 금강산 일대에 구름이 잔뜩 끼어 비가 올듯한 날씨가 계속된데다 전날 내린 비로 행사장 바닥이 젖어있는 관계로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진행됐다.
개별상봉서 전날 찍은 사진 놓고 이야기꽃
개별상봉은 이날 오전 8시50분 남측 가족들이 상봉장인 금강산 호텔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북측 가족들은 이보다 20분 앞서 도착, 지정된 각 객실에서 가족들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북측 가족들은 남측 가족들을 위해 술과 가족사진 3장, 과자 등으로 구성된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해왔다.
남측 가족들은 의류 등 부피가 큰 선물을 전날 화물차량 편으로 일괄전달해서인지 이날은 현지에서 구입한 사탕과 과자 등을 쇼핑백에 담았다.
남측 가족들은 특히 전날 단체상봉 때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인화해온 사진을 소재로 북측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인화해온 일부 남측 가족들은 미처 상봉에 참여하지 못한 북의 다른 가족들에게 사진을 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현대아산측은 남측 이산가족들을 위해 숙소인 외금강호텔(옛 김정숙 휴양소) 로비에 임시로 속성 사진인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납북선원 누나, 애달픈 동생 걱정
이날 오전 개별상봉을 통해 1987년 동진 27호 납북선원인 동생 성호(48)씨를 만난 노순호(50.여)씨는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상봉장인 금강산 호텔문을 나섰다.
노씨는 기자들에게 "어젯밤에는 두 다리 펴고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그랬다. 동생 얼굴에 근심이 있어 보여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동생이 북에서 대학도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닌다고 하는데, 다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국군포로 이쾌석씨 "술은 되가져가 부모님 영전에 올려라"
국군포로인 이쾌석(79)씨와 개별상봉한 동생 정호(76)씨는 형에게 주려고 남측에서 준비해온 술을 끝내 전달하지 못했다.
정호씨는 "형님이 술을 사양하며 '이 술은 다시 부모님 영전에 갖다 드려라.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께 내 안부를 전해 드려라'고 했다"고 전했다.
쾌석씨는 또 동생들이 가져온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전 사진을 꼭 잡고 뚫어지게 보다 아무 말 없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고 한다. 동생 정호씨는 "꼭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형님이 살아 계시다고 말하겠다. 어머니가 매우 기뻐하실 것"이라며 형을 위로했다고 소개했다.
70대 할머니 낙상으로 남측 후송
이날 낮 12시30분쯤 공동오찬에 참석하기 위해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 계단을 오르던 유재복(75) 할머니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대한적십자사 측이 준비한 앰뷸런스 편으로 남측으로 후송됐다.
한적 소속의 한 의료진은 "외상은 없고 머리가 조금 부었다"면서 "쓰러지고 나서도 말씀은 제대로 하셨지만 정밀한 진단이 필요한 상태"라고 전했다.
유 할머니는 CT촬영 등을 위해 오후 1시40분쯤 남측 출입사무소(CIQ)를 통과, 속초 의료원에 도착했다.
유 할머니는 남편 임재실(82) 할아버지와 이번 행사에 참가해 북측 조카들을 만났다.
북측 행사진행 요원들 전례없이 부드러워
북측 행사 '보장성원(지원요원)'들은 첫날 상봉에 이어 27일에도 전례없이 부드러운 태도로 행사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개별상봉이 벌어지는 동안 북측의 보장성원들은 금강산호텔 로비와 찻집에 모여 앉아 이산상봉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또 평양에서 파견된 북측 기자들은 남측 행사 관계자와 기자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남북 양측의 진행요원과 기자들이 12층 스카이라운지에 모여 점심을 함께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상봉과정에서 벌어지던 남북 행사관계자들 사이의 신경전이나 고성이 사라졌고 남북한 취재기자들 간 몸싸움도 없었다.
남측 관계자는 "과거 행사 때는 북측 보장성원들이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며 "이번의 경우 북측도 돌발상황이나 남측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려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동식 24시간 편의점 인기
현대아산 측은 남측 이산가족과 행사 진행요원, 한적 자원봉사자들의 편의를 위해 숙소인 외금강호텔 앞에 이동식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해 눈길을 끌었다.
대형 트럭의 적재함을 개조해 음료와 과자, 비누, 치약, 양말 등 간단한 생필품을 팔도록 만들어진 편의점은 금강산지역에 문을 연 유일한 상점이다.
이곳에는 두 명의 직원이 배치돼 이용객들이 필요한 물품을 판매했다.
남측 가족들은 27일 개별상봉에 앞서 과자와 사탕 등은 물론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간단한 생필품 선물 등을 이곳에서 구입해 북측 가족들에게 건네기도 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본래 온정각에 편의점인 '훼미리마트'가 입점해 있으나 1년 넘게 관광이 끊기면서 문을 닫은 상태였다"며 "이번 행사를 위해 트럭형 이동식 편의점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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