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렸는데 신상공개?…흉악범 머그샷 공개 입법 속도낸다

정유정 졸업사진 공개에 "신분증 사진과 달라" 지적 이어져
고유정 계기 신분증 사진도 공개하지만 머그샷은 동의 필요
"신상공개 실효성 높여야"…여야 모두 머그샷 공개법 발의
  • 등록 2023-06-10 오후 1:31:34

    수정 2023-06-10 오후 2:41:07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정유정의 사진이 실제 모습과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신상공개제도 실효성 확보를 위해 수사기관에서 촬영하는 ‘머그샷’을 공개해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리고 있다. 국회도 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지난 2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신상정보가 결정된 정유정에 대해 신상정보와 함께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했다. 당일 검찰로 송치되며 취재진 앞에 선 정유정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꼼 감춰 실제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신상공개 후에도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얼굴 공개를 막은 흉악범들. 왼쪽부터 고유정, 이기영, 정유정. (사진=연합뉴스)
최근 정유정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등이 온라인상에 공개되자 “공개된 증명사진과 매우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는 신상이 공개됐음에도 실물과 전혀 다른 모습의 신분증 사진만 공개할 수밖에 없는 현재 신상공개제도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최근 신상공개가 결정된 흉악범들 다수가 이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흉악범 신상정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1990년대 중반까진 피의자는 검거 직후 언론에 공개돼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았다. 심지어 피해자 신상까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후 피의자 인권 보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며 조금씩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하던 관행도 사라졌다.

그리고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 수사 당시 경찰의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거센 파문을 일으키며 ‘인권 수사’ 요구가 빗발쳤다. 다음 해 인권위의 피의자 경찰 호송 관련 제도의 개선 권고에 따라 경찰이 피의자 신원 노출 금지 조항을 담은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제정함에 따라 이때부터 피의자 신상은 철저히 가려졌다.

현제도선 피의자가 필사적으로 가리면 얼굴 확인 어려워

2000년대 중후반 흉악범 신상을 전혀 공개하지 않다가 잇딴 연쇄살인범의 등장에 피의자 신상공개 여론이 들끓었다. 연쇄살인범 정남규·강호순 등의 신원마저 공개되지 않으면 여론이 폭발하자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2011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으로 6대 강력범죄와 성범죄에 대해 신상정보의 근거 조항을 마련했다.

신상공개에 대한 사회적 찬반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결국 신상정보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강력범죄의 경우 법률에 대략적 기준을 적시한 후 ‘피의자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남용해선 안 된다’는 조항도 함께 명시했다. 이를 근거로 만든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은 제정 당시 ‘얼굴을 공개할 때엔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해선 안 되며, 얼굴을 가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경찰 규칙에 따라 피의자가 신상공개 후 처음으로 취재진 앞에 서는 검찰 송치 시 경찰관들은 얼굴을 공개하지 위한 적극적 행동을 할 수 없다. 1980~90년대처럼 범인 호송 과정에서 기자들이 범인 얼굴을 잘 촬영할 수 있게 얼굴을 잡는 등의 행동이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왼쪽은 정유정 고등학교 졸업 사진. 오른쪽은 경찰이 공개한 신분증 사진. (사진=MBN)
일부 피의자들은 취재진 앞에서 얼굴이 공개되지 않기 위해 온갖 수를 썼다. 2019년 3월 신상공개 후 검찰 송치 과정에서 점퍼에 얼굴을 뭍은 채 고개를 푹 숙여 정수리만 찍혔던 노부부 살인범 김다운이 대표적이다. 경찰로서도 법적으로 ‘적극적 조치’가 불가능해 이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신상공개 제도에 대한 실효성 지적이 제기되던 상황에서 2019년 전 남편 살인범 고유정의 이른바 ‘커튼머리’로 인해 얼굴 공개를 매우 손쉽게 피해 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자 경찰은 2021년 1월 공보규칙을 개정해 “필요한 경우 수사과정에서 취득하거나 피의자 동의를 얻어 촬영한 사진·영상물 등을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2021년 신원이 공개된 흉악범 10명 중 9명은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신원공개 결정 즉시 신분증 사진이 외부로 공개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먼저 공개된 신분증 사진과 이후 공개된 실물과 너무 큰 차이를 보여 논란이 됐다. 신분증 사진 특성상 오래전 사진인데다, 이마저도 보정이 많이 들어가 실물과 많이 달랐던 것이다. 신분증 사진 공개로는 신상을 공개하는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남편 살인’ 고유정 커튼머리 계기로 신분증 사진도 공개

신원이 공개될 경우 피의자는 검찰 송치 단계에서 취재진 앞에 서게 된다. 경찰 차원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은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취재진 앞에서 피의자 얼굴이 공개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신상정보 공개에도 피의자가 옷 등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얼굴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모습을 확인하긴 쉽지 않다. 동거여성과 택시기사를 살해한 이기영과 이번에 정유정 역시 모자와 마스크로 실물 공개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결국 신원이 공개가 결정됐지만 실물과 다른 신분증 사진만 공개된 격이다.

이에 따라 신분증 사진이 아닌 피의자 체포 후 수사기관에서 촬영하는 ‘머그샷’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경찰 공보규칙상 머그샷 공개를 위해선 ‘피의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얼굴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피의자가 머그샷 공개에 찬성할 가능성은 낮다.

실제 지금까지 머그샷이 공개됐던 것은 2021년 12월 신상이 공개된 여자친구 가족 살해범 이석준이 유일하다. 이기영이나 정유정 등 다른 피의자들은 머그샷 공개를 거부했다. 경찰로서도 이 경우엔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법조계에선 지속적으로 머그샷 공개를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신상공개 찬반은 논외로 일단 시행된 제도인 만큼 제대로 운영을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구속력이 약한 경찰 규칙이 아닌 법률 개정을 통해 신상공개 피의자 머그샷을 강제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나섰다. 지난해 이기영 사건을 계기로 신상공개제도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머그샷 등 최근 사진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여야 의원들 다수가 발의한 특정강력범죄 처벌법 개정안에는 신상공개가 결정될 경우 공개하는 사진을 △30일 이내 촬영 △수사기관에서 촬영 등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 확보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여야 간 공감대가 상당 부분 형성되고 있는 만큼 국민의 알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고 피의자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을 도모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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