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죄와 비선진료 의혹을 제외한 다른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들은 대부분 재판이 시작됐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의 태도는 극명하게 갈린다.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역공에 나서는 경우가 있는 반면 대부분 혐의를 받아들이고 국정농단의 실체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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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의 몸통인 최순실(61)씨는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출연을 강요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씨는 검찰과 특검이 적용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다.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실제 운영은 최씨가 했다”고 증언해도 “조언만 했다”고 부인하는 식이다. 그는 재단 설립과 관련해 자신과 박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측이 꾸민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최씨의 주장에 동조해 고씨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며 탄핵은 원인무효라고 주장한다.
영재센터가 삼성과 한국그랜드코리아레저 등에 후원금을 강요한 데 대해서는 조카인 장시호(38)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영재센터 관계자들이 “최씨가 직접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진술했지만 최씨는 “영재센터 운영은 장씨가 했다”고 부인했다.
김기춘 ‘법리공방’ 설전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 작성 자체가 정책적 행위일뿐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 전 실장 변호인단은 지난달 28일 열린 첫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한편 특검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김 전 실장 측은 문화계 지원배제 명단을 작성한 것은 정상적인 국정 운영일 뿐만 아니라 명단 작성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좌편향된 문화계 지원 체계를 바로 잡았을 뿐”이라는 게 김 전 실장 주장의 요지다. \그는 블랙리스트 시행에 소극적인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에 대해서도 “1급 공무원은 신분 보장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의 정상적인 인사권 행사였다”고 항변했다.
‘유신헌법의 설계자’로 알려진 김 전 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법 전문가다. 특검이 자신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등 혐의를 법정에서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적극적인 법리 공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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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재판에서 주요 혐의를 인정하며 국정농단의 실체를 공개하는 이들도 있다. 최씨 조카인 장시호씨와 정호성(49)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대표적이다. 장씨는 재판에서 삼성 등에 후원금을 강요한 혐의를 인정했다. 또 영재센터 운영을 주도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최씨 지시를 따랐다”고 밝혔다. 다만 영재센터 자금을 횡령한 의혹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재판 외에 특검 조사에서도 최씨가 사용했던 태블릿PC를 제출하거나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전화할 때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번호 일부를 전달하는 등 ‘특검 도우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장씨의 이 같은 입장은 최씨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그는 최씨가 검찰 조사에서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자백과 적극협조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비서관도 재판에서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전달한 점을 인정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최씨에게 문건을 전달했다는 점 외에도 최씨의 청와대 출입 과정 등을 증언했다. 문건 전달 등 최씨와의 관계가 명확히 드러난 상황에서 이를 부인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밖에도 장씨와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김종(55) 전 문체부 2차관의 경우 ‘삼성 후원금 강요’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은 증언했다. 그는 또 최씨에게 비밀 문건을 전달했다는 혐의도 최근 재판에서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