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 222호 ‘백자청화매죽문호’. 조선백자 중에서도 명품으로 평가받는다(사진=호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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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일대는 에르메스와 랄프 로렌 등 이른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매장이 입점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진정한 명품으로 가득한 곳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미술관으로 꼽히는 호림박물관의 신사분관이 바로 도산공원 정문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호림박물관은 성보화학 창업주인 성보문화재단 윤장섭(95) 이사장의 호를 따 1982년 10월 문을 열었다. 개성 출신의 윤 이사장은 고향 선배인 최순우(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교우하면서 문화재와 미술품 수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대부터 꾸준히 문화재와 미술품을 수집해 호림박물관에 기증했다. 호림박물관은 현재 국보 8점, 보물 52점,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11점 등 약 1만 5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본관은 관악구 신림동에 있으며 신사분관은 2009년에 문을 열었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내년 2월 27일까지 여는 ‘호림명품 100선’ 전은 삼국시대 이전의 토기를 비롯해 불교미술과 도자기를 중심으로 박물관이 소장한 작품 중 엄선한 명품 10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 12세기 무렵 고려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는 보물 1504호 ‘청자표형주자’(사진=호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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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상형토기: 바람을 담다’란 주제 아래 삼국시대를 비롯해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는 상형토기를 전시한다. 상형토기는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토기란 뜻. 5세기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배모양 토기’와 ‘집모양 토기’를 비롯해 ‘기마인물모양 토기’와 ‘차바퀴모양 토기’ 등 다양한 형태의 상형토기가 나왔다. 상형토기는 삼국시대의 생활상을 추론할 수 있는 주요한 근거다. 특히 말·수레·배 모양의 상형토기는 죽은 이의 영혼을 내세로 운반하는 상징성을 띠고 있어 주로 무덤 안에서 많이 나왔다. 이외에도 집모양 토기는 실생활에서 곡물을 담았던 생활용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14세기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하는 불화 ‘수월관음도’. 국내에 10여점 남은 불화 중 한점이다(사진=호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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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 염원을 담다’는 주제의 백미는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다.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현재 약 160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30여점이 일본에 있고 나머지 20여점은 미국과 유럽에 퍼져 있는데, 정작 한국에는 10점 정도가 남아 있다. 그중 한 점을 호림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14세기에 그린 것으로 추측하는 ‘수월관음도’ 옆에는 그림의 주인공인 관음보살을 상징하는 정병을 함께 놓아 의미를 더했다.
또한 고려 1337년에 만든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이 눈길을 끈다. 국보 211호인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고려말 밀교가 성행했던 시기에 제작했다. 1권부터 7권까지 온전하다. 금박을 입힌 삽화의 정교함과 세밀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백지에 먹으로 쓴 이 법화경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또한 보물 808호 ‘금동탄생불’과 보물 1047호 ‘금동대세지보살좌상’ 등도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를 뽐낸다.
‘명품도자’를 주제로 꾸민 전시실에서는 고려청자부터 조선 후기의 분청사기와 백자까지 한국 도자기의 명품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다. 조선백자 중에서도 특히 손꼽히는 국보 281호 ‘백자주자’와 국보 222호 ‘백자청화매죽문호’는 15세기 도예 명품의 단아하고 고졸한 미를 증명한다. 12세기 고려시대 ‘청자표형주자’(보물 1540호)는 청자의 깊은 색감과 매끈한 선을 온전하게 전한다. 18세기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조선대호’ 일명 달항아리는 조선 도공들의 호방함과 자연스러운 미감을 옹골차게 담았다.
| 국보 281호 ‘백자주자’. 15세기 조선백자의 정수를 담은 명품으로 평가받는다(사진=호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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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주제전시 외에도 새로 문을 연 신사분관 내 기획전시실에서는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 21세기에 다시 보는 또 다른 전통도자’ 전을 열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해주백자와 회령도기를 볼 수 있다. 특히 잿물 유약으로 특유의 회청색이 도는 대형 회령도기가 각별하다. 민간의 장인이 일상적인 용도로 만들었음에도 독특한 미감을 간직한 회령도기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호림박물관 관계자는 “그간 기획전 중심으로 운영했던 신사분관을 명품 중심의 상설전을 운영하는 곳으로 변화를 주기 위해 전시를 준비했다”며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빛나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명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국보 211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고려 1377년에 제작했다(사진=호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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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는 회령도자기 ‘회령유호’(사진=호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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