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진의 월급봉투] ‘하도급법 족쇄’에 알바생 “내 알바비는 언제 받죠”

하도급 대금 지급 60일 명시…계약 만기일 지급 관행
하청업체 알바생에게 임금 지불 차일피일 미뤄
노무사 “임금체불 예방차원서 대금 지급 기일 줄여야”
중소기업끼리 계약시 자금조달 부담될 수도
“원·하청 계약 관계없이 임금체불은 근로기준법 위반”
  • 등록 2018-03-04 오전 11:21:42

    수정 2018-03-04 오전 11:21:42

새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기기 판촉을 맡은 하청업체에서는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체불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지난해 스마트폰의 판촉대행 업무를 맡은 A사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 이모(28)씨. 그는 사업기간(2월 22일~3월 8일)이 한 달이 지난 이후에도 A사로부터 밀린 임금을 받지 못했다. 회사 측은 밀린 임금을 한 번에 지급하겠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씨처럼 단기 알바로 일하면서 임금체불을 당한 사람은 130여명에 달했다.

당시 A사는 왜 알바생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유는 하도급 계약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2월 스마트폰 판매사(원청)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에 따른 납품대금지급(이하 하도급 대금 지급)을 사업완료 시점에서 60일 이내(5월 초)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했던 A사는 원청으로부터 대금을 받아야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소식을 접한 원청사는 계약상 대금 지급 기일이 남아 있었지만 하청업체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바비를 포함한 총 사업비 1억 8000만원을 4월 12일 일괄 지급했다.

이 같은 행태의 임금체불은 새 휴대폰이 출시될 때마다 심심찮게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자금 유동성이 떨어지는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발생한다. 또 국내 산업구조가 원·하청 간 계약으로 이뤄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단기 알바생들의 임금체불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알바생 포함)들의 임금체불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은 없는 걸까. 노무사와 고용노동부 및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들과 함께 질의응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Q. 이번 사례와 관련해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가?

A. 하도급 대금 지급 기간이 현행 60일인 점이다. 하도급법(제13조)에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와 사업 계약을 체결할 때 대금을 60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간 원청업체는 관행처럼 60일 만기일에 맞춰 대금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대금 지급 기간(60일)과 하청업체가 고용한 단기 근로자의 임금 지급 시기 사이 공백 이 생기면서 임금체불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Q. 일선 사업장에서 하도급 대급 지급 문제가 많은가?

A. 실제로 하도급 대금 지급 관련 분쟁 건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2016년 접수된 분쟁 조정 건수는 2433건으로 2015년 1050건보다 9%(93건) 증가했다. 이중 하도급 대금 지급 위반 행위를 포함한 하도급 분야가 1143건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약 47%를 차지했다.

Q. 이번과 같이 하도급 계약에서 원청은 하청업체 임금체불에 대한 책임은 없는가?

A. 알바생들은 하청업체에 고용됐기 때문에 원청사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Q. 어떻게 하면 하도급 대금 지급 문제를 줄일 수 있는가?

A. 우선 대금 지급 기일을 줄여야 하도급 사업구조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줄일 수 있다. 자금력이 떨어지는 하청업체는 원청으로부터 대금을 받기로 한 날짜 이전에는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원청은 하도급법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서 임금체불과 관련한 원·하청업체의 공동 책임을 묻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에 대금 지급 기일을 줄이는 것이 근본적으로 바람직하다.

Q. 또 다른 개선안은 없는가?

A. 대금 지급 기일을 획일적으로 60일로 규정하지 말고 사업특성이나 업종에 따라 유연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 임금체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청이 자금조달 능력이 없는 하청업체와 일을 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근로기준법(제44조의2)의 적용을 현재 건설업에서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

Q. 법 개정 움직임은 없나?

A. 정치권도 하도급법을 손보겠다며 나선 상태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하도급 대금 지급기일을 현행 목적물의 수령일로부터 60일에서 50일로 단축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Q. 하도급 대금 지급 기간을 줄이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A. 중소기업 자금조달 문제와 어음 결제 제도 개선이다.

하도급 대금 지급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 대금 지급 기일을 줄이면 중소기업의 경우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예컨대 중소기업간 원·하청 거래가 이뤄진다면 원청업체가 자금조달 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 않아 대금 지급 기간 단축은 중소기업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어음 대체 결제 대신 현금 결제가 산업계에 자리 잡아야 하도급 대금 지급 문제가 줄어들 수 있다. 어음 대체 결제는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게 납품 후 발생하는 외상 매출 채권을 담보로 하청기업이 은행에 대출을 받고, 해당 외상 매출 채권 만기일에 원청회사가 이를 결제하는 방식이다. 어음 결제 방식도 관행처럼 굳어진 상태다.

Q. 하도급법 개선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떠한가?

A. 하도급 대금 지급 기간을 줄일 수 있으면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을 줄이면 줄이는 만큼 해당 업체에게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관련 제도를 손보는 데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다만 원·하청 사업 계약에서 어음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부분부터 개선해나간다면 하청업체 임금체불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가 어음 결제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분야 개선도 이뤄질 전망이다.

Q. 하청업체가 직원들의 임금을 하도급 대급기간에 맞춰 일괄 지급하려고 했다는 데 이 행위는 정당한가?

A. 하도급 대금 지급기일과 관계없이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불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해선 안 된다. 하청업체가 근로자들에게 60일 이내에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원청과 맺은 계약사항일 뿐 임금체불의 불가피한 요인이 될 수 없다. 이번 사례와 같이 휴대폰 판촉 담당 하청업체에 고용된 알바생들은 근로기준법(제36조)에 따라 계약이 끝난 날짜(3월 8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사업주로부터 임금을 반드시 받았어야 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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