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ESG 제 역할 못한 정부, 이제라도 기업과 머리 맞대야"

`ESG 전도사`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뷰
"첫 단추 꿰는 기업들, 정부만 제도화 너무 서둘러"
"해외정보 제공에도 소홀…기업들과 머리 맞대야"
"국민연금 ESG 확대, 수익률 우려…시간 필요해"
"그린 워싱은 불가피…금융권 스스로 걸러낼 것"
  • 등록 2021-03-18 오전 6:12:00

    수정 2021-03-18 오전 6:12:00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자체는 늦은 편이지만, 금융당국이 기업들에게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아울러 다른 나라들이 ESG 차원에서 도입하는 각종 규제와 제도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기업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기업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머리를 맞대야만 합니다.”

이재혁 고려대 교수 (사진=방인권 기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서 교내 사회적기업센터 소장과 지속가능경영 연구그룹장을 맡고 있고, 지속경제사회개발원 창립 멤버, 코트라(KOTRA) 글로벌 CSR사업 심의위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민관합동 태스트포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혁 교수는 17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기업들이 ESG를 제대로 준비하고 이를 내재화하기 위해 이 같은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 교수는 내년까지 전체 자산의 50%를 ESG 관점에서 투자하겠다는 국민연금의 계획에 대해서도 적절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지 의구심을 표시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폈다.

다음은 이재혁 교수와의 일문일답.

-국내 기업들이 ESG를 잘 받아 들이고 있나.

△우리 기업들도 ESG의 중요성은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고 이사회 내에도 ESG 전문가를 포진시키고 별도 위원회도 만들고 있다. 이를 보면 어느 정도 ESG를 이해하고 있는 듯도 하다. 다만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다 다르다 보니 기업들마다 ESG 전략도 다 달라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대체로 비슷하긴 하다. 물론 아직은 ESG를 내재화하려는 단계다 보니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 지는 이제부터 따져 봐야할 것이다. 일단 ESG를 이해하는데서 진전이 있는 정도라고 하겠다. 이제 첫 단추를 꿰고 있는 수준이다.

-기업들이 ESG와 관련된 내용을 제대로 공시하는 일이 시급한데.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에 전 상장사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자체만 보면 우리의 입법화나 제도 도입은 결코 빠르다고 할 순 없다. 그렇다 보니 이를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ESG 논의가 활발해지고 난 뒤 금융위가 의무화 방침을 밝히기까지의 기간만 놓고 보면 오히려 굉장히 압축적으로 수용하고 이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 당국 발표는 오히려 너무 서둔 감도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이런 제도 도입을 사전에 인지하고 예측 가능하도록 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줬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런 논의를 이제부터라도 해야 하겠다.

△금융위 발표를 보면 지배구조 이슈는 지배구조 보고서에, 나머지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기업들에게 공시 부담을 완화해줄 지 미지수다. 기업들과의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함으로써 기업들의 공시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정부나 학계 모두 기업과 협업하면서 ESG라는 도전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 결국 ESG가 누굴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기업들이 ESG 경영을 어떻게 할 수 있을 지 스스로 고민하고 이를 잘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가 기업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속성으로 가고 있는 감이 있다.

-ESG에 속도를 내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사업하거나 납품하는 국내 기업들은 이미 영향을 받고 있을 것 같다.

△기업들을 만나보면 꽤나 높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RE100(재생에너지 100%) 가입이 의무화되고 있는데, 이에 들어가지 못하면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제외될 수도 있고 해외로 갈 수도 없다. 또한 벌써부터 전통적인 관세를 넘어 탄소국경세까지 고민해야 한다. 유럽의 경우 물건을 수출하려면 탄소배출에 상응하는 관세를 내야 하는데, 이건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무역장벽이다. 특히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명분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재생에너지 가격이 화석연료보다 더 싸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력직접구매 등 각종 제도로 인해 재생에너지 가격이 여전히 비싸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준비를 해오지 못했던 탓에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이 너무 커졌다. 게다가 탄소국경세 등에 대한 정보도 우리 정부가 기업들에게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 산업부나 환경부 등이 그 역할을 했어야 했다.

-수많은 ESG 평가지표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좋은 지표는 어떻게 가려낼까.

△측정하지 못하면 개선하지 못한다고 했다. 모든 평가지표가 더 중요하다. 다만 최근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평가를 봐도 평가지표들 간에도 서로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 평가지표 마다 평가회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주안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만 해도 테슬라의 ESG 지표를 높게 평가하지만, 서스테이널리틱스는 테슬라보다 GM을 더 좋게 본다. 공개된 지표만 보느냐, 기업들이 공개하는 정보까지 보느냐, 기업 피드백까지 감안하느냐 등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다 다르다. 결국 어느 지표를 중요하게 볼 것인가는 해당 기업이 선택할 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평가지표를 통일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그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앞으로 더 많은 평가지표들이 등장할 것이다. 결국 모든 지표가 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평가기관별로 주완점이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국내 지표라도 글로벌 평가지표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한국적인 상황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이나 협력업계와의 관계, 경력단절 여성 등 한국적인 색채가 덧씌어진 지표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해당 지표가 가져다주는 수익률에 따라 한 두 개로 수렴될 것이다.

-국민연금도 내년까지 전체 자산의 50%를 ESG 투자로 확대한다는데 문제는 없을까.

△국민연금이 총 자산의 50%를 ESG 투자로 하겠다는데 대해서는 반대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어떤 기준으로 투자할 것인 지가 궁금하다. 또 이 같은 ESG 투자 확대가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을 높여줄 수 있을 지도 걱정된다. 이렇게 ESG 투자를 늘렸는데 혹시라도 투자에 따른 재무적 성과가 낮아진다면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ESG 추구 펀드가 일반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펀드가 편입하고 있는 기업들 대부분이 IT 기업들이고 코로나19로 인해 수혜를 받은 기업들이다 보니 ESG 투자에 따른 수익률 제고에 대해서는 아직 유보적이다. 국민연금이 50%를 ESG 투자로 한다고 했지만 고민스럽긴 하다. 올해 안에 완벽한 투자 평가지표를 만들어낼 것인가도 다소 걱정이다. 현재 ESG 평가 결과가 좋은 기업들도 코로나19 팬데믹 하에서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볼 수도 있다. ESG 등급이 좋은 우량 기업이라도 주가는 예상과 달리 갈 수도 있다. 평가방법이 얼마나 과학적이냐는 건 시간과의 싸움일 수 있다. 수 많은 데이터를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SG본드를 통한 자금 조달이 느는데 그린 워싱이나 임팩트 워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원래 침소봉대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지라 그린 워싱은 불가피하게 생겨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를 가려내는 역할을 하는 게 금융섹터다. 내가 돈을 빌려 주려면 떼일 염려가 없는 상대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해당 기업의 리스크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사들은 기술 평가도 하고, 신용 평가도 한다. 결국 그린 워싱이나 임팩트 워싱이 있을 순 있지만, 금융권 스스로가 이를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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