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헌법재판소에 쏠려 있다. 늦어도 열흘 이내에 나올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심판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호(號)의 진로가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추안이 기각되면 박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지만 인용되면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함께 조기 대선 국면에 돌입한다.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대선주자들마다 헌재의 인용 결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저마다 표심몰이에 한창인 이유다.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범여권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제외하면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형국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두 사람의 가치관과 지향점이 매우 대조적이란 점이다. ‘적폐 청산’을 내세우는 문 전 대표는 그제 페이스북에서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이 독재세력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 지사는 “김구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있다. 그들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며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다.
어떤 가치와 구호를 앞세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대선주자 본인 몫이다. 문 전 대표나 안 지사 모두 지지율을 의식한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적어도 일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려는 정치인이라면 나라의 처지가 어떤지 정도는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오른쪽)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달 1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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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촛불로 두 동강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좌·우익이 신탁통치 찬반으로 갈려 유혈 충돌을 일삼던 70년 전의 해방공간을 방불케 한다.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극심한 국론 분열에 따른 엄청난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그만큼 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당시의 분열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대선주자로서 국민의 분열과 증오를 부추기는 언행은 금물이다.
적폐를 청산하자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다만 “나는 무조건 옳고 너는 무조건 틀렸다”는 식의 독선으로는 적폐 청산은커녕 분열과 갈등만 키워 나라를 또다시 결딴내기 십상이다. 도대체 김대중·노무현 진보정권 10년 동안 뭘 했길래 아직도 친일·독재청산 타령이란 말인가. ‘화해와 용서’의 상징으로 세계의 추앙을 받았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대한민국에도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