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인가, 미술품인가...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포스트아카이브팩션 전시 '파이널 컷'
"패션의 예술적 실험 태도 재밌게 풀고자"
  • 등록 2021-03-18 오전 6:00:01

    수정 2021-03-18 오전 6:00:01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전시장 한가운데 날개처럼 생긴 철판 여러 개가 둥그렇게 모여 있다. 그 주변 바닥에는 옷들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다.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둥근 조형물은 흔히 접하는 추상조각으로 보인다. 얼핏 보기에 옷과의 조화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조형물은 옷의 가장 기초가 되는 패턴을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같은 패턴에서 탄생한 전혀 다른 모양의 옷, 또 그 옷을 만들어낸 조형물은 묘하게 새로운 리듬을 형성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연 ‘파이널 컷’ 전 설치 전경 중 일부. 패턴을 입체적으로 만든 조형물 주변에 디자인한 옷들을 전시했다(사진=아라리오갤러리).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회화·조각 등 전통적인 미술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8일부터 여는 포스트 아카이브 팩셕(PAF·파프)의 ‘파이널 컷’ 전도 예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 파프는 2018년 첫선을 보인 국내 남성복 브랜드다. 패턴의 과감한 해체와 전위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하는 디자인으로 국내외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시는 파프의 실험적인 시도를 미술 공간으로 옮겼다. 파프의 옷과 함께 조각 10여점과 회화·드로잉 20여점으로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문다. 전시장에서 백화점처럼 옷을 진열해 판매도 하고, 진열장에 있어야 할 옷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전시 오픈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연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아트디렉터는 “파프의 예술적 실험 태도에서 미술의 확장성을 찾았고, 그것을 전시 공간에서 재밌게 풀어내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파프는 옷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 형태인 패턴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패턴으로 인식되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는 파프의 철학을 반영하듯, 이번 전시에서 패턴은 옷뿐 아니라 전혀 다른 입체적인 형상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공간적 측면에서는 빛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일반적 방식을 비틀었다. 바닥에서 위로 솟구치는 빛을 통해 옷과 조각들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연 ‘파이널 컷’ 전 설치 전경 중 일부(사진=아라리오갤러리).
예술과 상업성의 경계도 허물고자 했다. 2층 공간에서 관람객은 진열장에 널려있는 옷과 그림을 쇼핑하듯 직접 움직이며 감상할 수 있다. 각 옷과 그림에는 상품처럼 실제로 판매되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미술관에서 옷을 판매하는 게 낯설게 느껴진다는 반응에 임동준 파프 대표는 “이것을 옷이라고 생각하면 옷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하면 예술”이라며 “일반적으로 옷과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 공간에서 새롭게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패션계의 소비 방식을 비틀어 아직 옷이 되기 전인 패턴 조각들만 따로 모아 판매하기도 한다.

전시는 단순히 새로운 시도가 아닌, 예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시작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전시명 ‘파이널 컷’은 준공식·개관식·개막식에서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하는 퍼포먼스인 테이프커팅식에서 의미를 가져왔다. 테이프커팅식을 하는 순간 테이프는 영원히 끊겨버리지만 이는 한편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예술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공존의 순간에 다양한 변칙이 발생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극대화해 제시하고자 했다. 주 디렉터는 “이미 예술 영역의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5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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