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법률칼럼]故조영래 변호사와 인간애

'전태일 평전' 통해 조영래 알게 돼
꺾이지 않는 소신의 소유자
인간애와 법조인 정신 기억해야
  • 등록 2020-03-14 오전 8:31:00

    수정 2020-03-14 오전 8:31:00

이데일리는 새해 들어 ‘인천 법률칼럼’을 연재합니다. 인천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칼럼을 통해 유용한 법률상식, 변호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 일상의 잔잔한 감동을 독자와 나눕니다.[편집자 주]

김종호 변호사.


[김종호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올 1월 한국지엠(GM) 하청업체 사장단과 비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해고 근로자 46명 중 20명이 복직하는 데 합의했다. 이들은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와 부평공장 근무제 축소 등에 따라 해고됐던 근로자들이다.

해고와 투쟁이 반복되는 현 시대의 부조리함을 지켜보면서 만인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가고 있지만 문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사람이다. 필자가 가장 존경했고 앞으로도 가장 존경하고 싶은 법조인,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바로 그다.

법에는 문외한이었던 필자가 조영래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전태일 평전’을 통해서다. 대학생 시절 ‘전태일 평전’을 무거운 마음으로 가슴 떨리게 읽어낸 후 이 책의 저자 조영래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안경환씨가 집필한 ‘조영래 평전’을 단숨에 찾아 읽었다.

조영래는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으로 사람을 사랑했던 영웅이었다. 필자는 그를 명석한 두뇌와 강한 정의감 그리고 꺾이지 않는 소신의 소유자였다고 감히 평가한다. 그는 군사독재의 칼날이 서슬 퍼런 시절 주요 학생운동을 주도하면서도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사법연수원 연수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반 동안 투옥됐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되어 6년간의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씨앗이 되어 준 ‘전태일 평전’을 끈기 있게 집필해낸다. 비록 시국의 무참함 때문에 그의 이름을 저자로서 공개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이제 그의 이름이 실린 ‘전태일 평전’을 읽어볼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둠이 빛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역사는 진보하기 마련이다.

‘조영래 평전’은 조영래의 삶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한 인간이 살아내야 했던 비극적 시대 상황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굵은 단면을 입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5·16 군사쿠데타부터 1960~70년대 학생운동의 상황 그리고 인권탄압의 비참한 역사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사건들까지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그래서 ‘조영래 평전’은 평전의 느낌보다는 역사소설의 느낌이 강하다. 잊지 말아야 할 비극적인 현대사의 흐름을 주인공 조영래를 통해 다루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평전이다.

영웅주의는 거부해야 하는 것이지만 영웅이 추구했던 이상은 기억해야 한다. 영웅이 등장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영웅주의는 노예의식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정신은 기억되어 후대에 귀감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디 삶이라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 믿는 필자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고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평범한 우리네들이 조영래처럼 삶을 살아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짊어질 수 있는 십자가의 무게는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인간애와 법조인으로서의 정신은 충분히 기억되고 존경받아야 할 우리의 역사다.

여전히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소외되는 현 세태를 바라보며 필자는 변호사 조영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변호사로서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법조인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법과 법조인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조영래’를 되새겨 봐주기 바란다.

김종호 변호사 이력

△인천지법 파산관재인 △인천지검 상고심의위원 △인천가정법원 전문가후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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