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텔레콤 여직원 스테파니(32)는 지난 11일 아버지에게 이메일로 유서를 보내고 사무실에서 투신자살했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텔레콤에 취직한 그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지만 몇 년 전부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직장 동료 60%가 해고되고 남은 직원들도 회사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라 수시로 업무가 바뀌는 '전환 배치'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6월 스테파니도 9년간 근무했던 부서를 떠나 고객 서비스 파트로 직무가 변경됐다.
프랑스 최대 통신회사인 프랑스텔레콤에서 작년 3월 이후 무려 23건의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 사회가 충격에 휩싸이고 연일 언론의 톱뉴스로 오르내리자 자비에 다르코스(Darcos) 노동장관이 회사 사장을 소환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회사 측은 처음엔 프랑스인 평균 자살률(10만명당 26명 자살)과 비슷하며, 직장 스트레스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정부까지 개입하며 상황이 심각해지자 ▲심리치료사 상담을 위한 핫라인 설치 ▲전환 배치 중단 등의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 직장에서 23명이 자살한 데는 '문화적 요인'도 작용하는 것 같다. 프랑스에선 근로자들의 파워가 세, 경영상의 긴급한 이유라 해도 '해고'가 사실상 어렵다. 연초 기업의 집단 해고 움직임에 대해 프랑스 근로자들은 '경영자 감금'으로 저항했다. 근로자들의 경영자 감금은 비난을 받기보다 '오죽하면 저럴까'라며 동정을 얻었다. 영미식 자본주의 문화권의 근로자들은 '해고'에 익숙하지만, 프랑스인은 노동권 침해에 대한 내성(耐性)이 매우 약하다. 프랑스 언론이 이번 사태를 놓고 '인사(人事) 테러'라며 근로자 편을 드는 것도 이런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