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 소재 의존 현실, 대기업 탓만 할 건가

  • 등록 2019-07-30 오전 6:00:00

    수정 2019-07-30 오전 6:00:00

일본 정부의 추가 무역보복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경제계가 초비상 사태에 돌입한 상황에서 ‘대기업 책임론’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우리 대기업들이 속도에 매달린 탓에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해도 수입하는 쪽을 택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홍장표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장의 최근 언론 인터뷰 내용이 하나의 사례다. 일본 수출규제에 포함된 불화수소의 경우에도 국내 중소기업들이 생산하고 있지만 대기업이 외면해 사태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논쟁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문제는 대기업이 사주지 않는 것”이라는 박 장관의 주장에 대해 “반도체 공정의 요구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최 회장의 반박이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국내 제품 생산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협력에 안주하고 변화를 적극 추구하지 않았던 같다”라고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산 소재·부품에 의존하게 된 오늘의 현실이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 부족 및 단기이익 추구 등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정부 고위관료와 정치인이라면 대기업 책임론을 제기하기에 앞서 우리 산업구조와 기업환경에 대한 이해부터 높이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현재 일본의 1차 표적이 된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만 해도 글로벌 분업화의 결과다. 업체마다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부품을 조달해 최적화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가격에 내놓는 시스템이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순도 99.99999999%(텐 나인)의 불화수소 기술을 개발해 일찌감치 특허출원까지 마치고도 실용화에 이르지 못한 C&B산업의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 납품처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100억원 안팎의 투자비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인허가 과정이나 화학공장에 대한 주민 반대 등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자금난과 불투명한 수요처, 환경규제 장벽 등 중소업체들이 처해 있는 공통의 고민이 그대로 압축돼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과 규제철폐 노력이 소홀하지 않았는지부터 따져볼 일이다. 대기업 탓은 그 다음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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