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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인천에서 열린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 사흘간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심모(23·여)씨. 서류 심사와 최종면접까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선발인원(100명)에 포함됐지만 설렘은 잠시 뿐이었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주최 측의 비합리적인 처우가 생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심씨는 “음악을 좋아해 무급이라도 기꺼이 지원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 한 음악 축제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김모(24)씨도 “평균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상황에서 티셔츠도 한 장밖에 안 줘 퇴근하면 빨래를 해서 다시 입고 가야 했다”며 “너무 힘들어서 축제 기간 중간에 도망간 자원 봉사자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화려한 축제의 뒤편엔 자원봉사자 희생…‘무급’은 기본
여름철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자원봉사자들의 처우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무급’에 과도한 업무는 기본이고 전문성이 필요한 통역이나 안전요원 업무까지 자원봉사자들에게 떠넘기면서 ‘무임금 노동 착취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나 영화제 등 행사에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를 선발한다. 유명 연예인이 참여하는 공연의 경우 자원봉사자 경쟁률이 최대 10대 1까지 치솟기도 한다.
일부 행사는 통역이나 게스트 의전, 행사장 안전요원 등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업무마저 자원봉사자에게 맡기기도 한다. 한 음악 축제에 안전요원 업무를 맡았던 이모(23)씨는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면 관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탓에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버티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며 “혹여 큰 사고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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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 ‘경비 절약 차원’…도 넘은 자원봉사는 ‘노동력 착취’
행사 주최 측은 공연 입장료를 무턱대고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인건비 절약을 위해 자원봉사자 선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올해 공연 때 봉사한 분들에게는 내년도 공연 티켓을 보내 주거나 기념품을 제공하는 등 나름대로 자원봉사자들의 처우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주최 측이 무급 자원봉사자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맡기는 것은 일종의 ‘부당 노동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태섭 문화비평가는 “수익을 내는 축제나 행사에서 무급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것은 교묘하게 노동력을 쓰겠다는 것”이라며 “임금을 지불하고 질 높은 행사를 만드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예산상의 문제로 무급 자원봉사가 필요한 공익 사업이 아니라면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게 당연하다”며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대신 소정의 급여를 주고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