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금융당국이 내년 3월 15일 이후 공매도 재개를 사실상 확정한 가운데, 불법 무차입 공매도 차단 시스템 구축에 대한 동학개미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매도 금지 연장기한에 완벽히 준비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꿔 나가겠다”며 무차입 공매도 방지책을 연내에 마련하겠다고 여러 번 강조해왔다. 그러나 은 위원장이 약속한 시한을 불과 3주 남긴 현재까지도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업계에선 금융위가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 적발하는 시스템 구축은 “사실상 어렵다”고 결론내리고 사후에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국회에선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3~5배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 개인 공매도 기회 확대를 위해 일본 방식의 ‘K-대주시스템’을 도입, 개인의 공매도 대여 가능 금액을 현재 20배인 1조 4000억원 규모로 늘리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동학개미들은 외국인의 무차입 공매도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않고 개인의 공매도를 확대하는 것은 “유치원생과 성인을 격투기장 안에 들어가게 해서 경기를 하라고 하는 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동학개미들의 이런 불신은 금융당국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지난 2018년 5월 말 벌어진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의 무차입 공매도 사건에 대해 그해 말 7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 적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나도록 이 시스템은 도입되지 않았고, 은 위원장이 재차 구축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 공매도와 같이 전산 시스템상으로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메신저를 이용한 채팅 등으로 요청해 대여 기관이 수기로 입력하는 방식은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증선위가 지난 9월 무차입 공매도를 위반한 외국 운용사·연기금 등 4곳에 대해 7억 3000만원의 과태료 부과를 의결하며 조사한 결과, 모두 매도 주문 제출 과정에서 차입 계약 체결 여부나 주식 보유 여부를 착오해 발생한 사례였다.
문제는 설령 착오에 의한 이른바 ‘팻 핑거(fat finger·굵은 손가락)’ 무차입 공매도라도 그 결과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피해가 발생한 이후 사후 처벌만으로는 무차입 공매도 논란이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공매도 재개 이전에 은 위원장의 약속처럼 원천적으로 착오가 나올 수 없는 전산 시스템을 갖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