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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정했습니다. “일시적(transitory)”이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6월 연방준비위원회(FOMC)에서 인플레에 대한 우려를 시인한 것입니다. 시장과의 간극이 확실히 좁혀진 건 맞는 것 같지만,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그러나 올해가 지나가면 지속적인 인플레는 나오지 않을 것이며, 특정 인플레 동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질 것”이란 파월 의장의 쿨하지 못한 뒷말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영화 ‘빅쇼트’로 유명한 마이클 버리는 여전히 “사상 최고의 투기 거품이 껴 있다”며 인플레를 의심합니다. 20년 만에 찾아온 미국 주택시장 호황은 인플레의 복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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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6월 FOMC 회의 직후인 16일(현지시간) 오후 8시 20분 1.593%을 기록 전일 대비 10bp(1bp=0.01%) 가량 치솟았습니다. 직전 3월 회의 때는 2023년 기준금리 인상 의견이 7명이었는데, 이번엔 13명으로 늘었습니다. 점도표상 2023년 기준금리를 0.1%에서 0.6%로 2차례 인상하는 것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그동안 미국 물가지표가 서프라이즈를 냈음에도 꿈쩍 않던 채권시장은 연준의 이같은 변화에 움직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17일 오전 5시 20분 기준 10년물 금리는 1.572%로 내리는 추세입니다. 오히려 시장과 연준 간의 의견 차이를 좁혔다는,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측면에서 안정적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채권 전문가들은 10년물 금리가 하반기에도 3월 전고점 수준인 1.7%대 이상으로 상승하긴 힘들 걸로 보고 있습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이며 테이퍼링 논의는 필요 없다 했는데 사실 이게 리스크”라며 “금융시장도 무작정 완화적인 정책을 지속하는 게 아닌 테이퍼링 논의 시작과 필요할 경우 금리 인상을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이미 인식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실제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너지인 폴 튜더 존스는 15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이번 FOMC에서 연준위원들이 지금 나오는 지표들도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한다면 ‘인플레이션 트레이드’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FOMC가 끝난 뒤 미국채 금리는 올랐지만, 길게 볼 때 오히려 다행한 일입니다. 버틸 때까지 버틴 파월 의장의 줄타기가 매우 정교하면서도 성공적이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인플레를 무시했다면, 시장의 반발심은 더 커졌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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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지표도 상반기를 끝으로 수그러들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코로나19 기저효과 종료로 전년 동기 대비로는 올 하반기 꺾이는 것뿐만 아니라, 전월 대비로도 그렇습니다. 전월 대비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6% 증가로 4월 0.8%보다 이미 줄었습니다.
이는 최근 화두인 ‘물가 지표는 사상 최고치인데, 금리는 오히려 왜 내리는가’의 가장 단순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숫자상으로는 오름세가 한풀 꺾이는 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과 시장이 어느 정도 합의를 봤음에도,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지나고 있음에도, 인플레 논쟁은 조만간 더 뜨거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든 걸 잘 선반영한 줄만 알았던 시장을 당황케 하는 요인이 나타날 수 있어서입니다. 미국 주택시장이 지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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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물가(Housing)는 CPI에서 42.4%를 차지합니다. 주거 물가는 크게 세입자의 거주 주택 주거 비용인 ‘렌트(Rent)’와 집주인이 거주하는 주택의 주거 비용을 추정하는 ‘보유자렌트(Owner Equivalent Rent)’로 나뉩니다(전체 주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렌트 1: 보유자렌트 2). 전자는 쉽게 말해 월세고, 후자는 거주 형태가 자가여도 내가 내 집에 세를 내고 산다는 가정하에 추정해 보는 월세입니다. 굳이 보유자렌트를 만든 건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어떻게든 주거 물가란 명목을 취합해 CPI를 책정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로 볼 때 보유자렌트는 올해 1월 2.01%로 저점을 찍고 5월 2.11%로 상승했습니다. 렌트비는 4월 1.80%로 저점을 형성한 뒤 5월 1.82%로 올랐습니다. CPI 증가율의 경우 지난해 11월 1.13%에서 5월 4.9%까지 올랐습니다.
시차를 두고 이제 막 상승한 주거 물가가 ‘기저효과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방심한 CPI를 들어 올릴 변수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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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물가는 이제 시작했지만, 미국 주택 시장은 이미 작년부터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케이스-쉴러 주택가격지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작년 8월 3.5%에서 5월 13.3%로 급상승했습니다. 이 지수를 만든 장본인인 로버트 쉴러 교수는 “지난 100년간 데이터를 봐도 실질 가치 기준으로 주택가격이 이렇게 높았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가 땅이 모자라다’는 기사에서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꿈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건축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CPI의 주거 물가가 늦게 오르는 이유는 주택 가격이 올라도 계약 주기가 최소 연 단위인 월세는 이를 그때그때 반영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왜 주거 물가는 주택가격 지수에 1년 반 후행하나?’라는 보고서에서 “주택가격 지수가 주거 물가지수를 약 1년 반 선행하는데, 시차가 생기는 이유는 주택가격이 올라도 렌트의 조정 빈도는 약 1년이므로, 주택가격 변화가 임차료에 반영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주거 물가의 산정방식 때문에 지연 현상이 생기는 이유도 있는데,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작년 11월 조사한 것이 5월 주거 물가로 나타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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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공급 부족의 누적과 저금리로 인한 구매력 증가란 원인이 있겠으나 견조한 수요라는 요인에 비하면 데코레이션 같은 것”이라며 “수요는 탈도시화 등도 있겠지만, 이렇게 전 미국 전역에서 상승하는 건 인구구조의 변화로 밖엔 설명이 안 된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금융위기 이후 미국 주택시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한 축은 밀레니얼(25~34세) 중심의 인구구조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며 “미국 최대 부동산 정보 사이트 질로닷컴에 따르면 미국인이 생애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연령 평균은 33세”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주거 물가는 물가 지수를 구성하는 하위 변수 중 하나일 뿐입니다. 교통, 옷, 음식료, 여가 비용 등 다른 변수들이 하락한다면 소용없습니다. 그럼에도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건 시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코로나 기저효과가 이제 다 끝나 모든 사람이 ‘피크 아웃’을 말하는 현 시점에서, 느리지만 우직하게 오를 변수가 등장한다는 게 관건입니다.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물가 상승 모멘텀이 둔화하는 데 시장 이목이 쏠리겠지만, 길게 보면 모멘텀 둔화 속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며 “주거가 꺾이지 않고 버티는 걸 보게 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은 ‘어? 이거 생각보다 많이 안 낮아지네?’라며 당황하게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