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만난 한 농협금융 직원의 말이다. 농협금융지주 출범 이후 최초로 3연임(1+1+1년)에 성공했던 이대훈 농협은행장이 새 임기를 시작한 지 만 2개월 만에 사임하면서 금융권에선 뒷얘기가 무성하다. 농협금융 측은 지난달 4일 취임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인사권을 존중해 이 행장이 용퇴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행장뿐 아니라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 소성모 농협상호금융 대표, 김원석 농업경제 대표, 박규희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 이상욱 농민신문사 사장, 김위상 농협대 총장 등 농협중앙회 계열사 경영진 7명이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동안 중앙회장이 새로 취임하면 농협 계열사의 임원들이 사의를 표명해 왔다는 점에서 일종의 관례로 볼 수 있다.
이대훈 행장, 연임 2개월 만에 물러나
물론 이 행장은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의 사람으로 통한다. 이 행장은 김 전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면서 지난 2016년 은행 본부장에서 상호금융 대표이사로 파격 승진했고, 2018년 은행장으로 선임됐다. 이 행장의 사퇴가 이미 예견됐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관행 이유로…흔들리는 금융계열사
관행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행장의 퇴진은 아쉬운 면이 있다. 이 행장은 취임 후 1년 만에 농협은행의 당기순이익을 1조원대로 끌어올리고,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때문에 이 행장의 3연임이 결정됐을 당시만 해도 농협금융에 성과주의 문화가 정착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농협이라는 우산 아래에서는 금융계열사 CEO도 중앙회장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줬기 때문이다. 안정성과 독립성이 중요한 금융사 지배구조를 고려하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계열사 인사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에 자본금 100%를 출자한 단독 주주다. 또 농협금융지주가 농협은행을 비롯한 농협생명·농협손해보험의 100% 주주다. 농협은행장 인선에서 지배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단일주주 농협중앙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금융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선거 결과에 휘둘리게 하기 보다는 독립성을 지켜주는 게 농협금융의 경쟁력을 지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