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가계대출 확대와 이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를 바라보는 정부내 시각에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거시정책을 책임지는 재정경제부는 "금융시장 선진화에 따른 구조적 변화의 결과"로 보는 반면, 금융감독당국은 이미 "과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며 잇단 경고를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정부내 시각차로 금융회사들이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아직은 가계대출 확대 전략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거시경제점검회의 평가
지난 15일 재경부 주재로 열린 거시경제점검회의에서 가계부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결론은 비교적 간단하다. 재경부는 작년 은행대출의 91%를 가계대출이 차지했고, 신용카드 관련대출도 99년대비 4배 이상 급증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가계부채는 99년이후 급속한 증가세에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가계부채 증가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선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의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그렇게 우려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재경부는 이어 "금융시장 선진화"의 증거를 4가지로 요약했다.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수익성 위주 경영풍토 정착 ▲거래소·코스닥 등 직접금융시장 중심으로 기업자금조달 확대 ▲은행 구조조정과 공적자금 투입 등을 통해 금융기관의 BIS비율이 크게 제고됨에 따라 신규대출여력 확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폐지 등 규제완화 등이다.
즉, 은행의 가계대출 확대·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문제 등은 "금융시장 선진화"의 결과로, 그 자체로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부동산 가격 버블 및 중소기업 자금난 가능성에 등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점검회의는 첨언했다.
이날 거시경제점검회의는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기획예산처, 통계청이 참여했다. 또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 대외경제연구원, 국제금융센터, 삼성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 전경련, 국토연구원, 건설산업연구원, 금융연구원 등이 민간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했다.
◇금융감독당국 연일 "경고"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근영 위원장은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가 줄지 않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고, 금감원은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실시할 때 적용하는 대출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 14일 이근영 위원장은 신용카드사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금융감독당국이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경고함으로써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이 위원장의 포문은 신용카드사의 각종 불법적인 영업행태에 기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비중이 높은 데 따른 것이다. 이는 규제개혁위원회가 신용카드사의 손을 들어준 뒤의 일이어서, 금감위와 규개위가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도 하다.
금감원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등에 대한 경고를 계속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달 15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활황세가 버블이라면 최근의 소비자 부채증가 확산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국제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올해 전망 보고서를 인용한 자료를 내놓았다.
또 은행권의 각종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에 대해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edaily 1월 31일 9시 25분 "은행 가계대출, 과거 경험 부실률만큼 충당금 적립" 기사 참고) 그러면서 최근 일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높히고 있는 것은 "과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감원은 과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략 시세의 70%내외인 감정가에서 60~90% 정도를 대출했으나, 최근엔 과열경쟁으로 인해 감정가가 아닌 매매시세의 60~90% 수준까지 대출한도를 높히는 은행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금감원은 이 같은 과열경쟁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를 지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부동산 버블"에 대한 인식차
재경부와 금감위·금감원간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키워드는 분명 "부동산 버블 가능성"이다.
거시경제점검회의에서는 부동산가격 버블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이 가계대출 중에서도 특히 주택담보대출에 민간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분명히 부동산 버블 가능성 때문이다.
어찌보면 재경부의 거시경제 점검결과에 대해 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실천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은행 관계자들은 분명히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재경부의 "금융시장 선진화, 이에 따른 구조변화 결과"라는 단어와, 금감원의 "과열국면" 표현을 같이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이 주류를 이룬다.
결국 은행들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 특히 가계대출 확대가 이미 우리 은행들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전략선택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대로만 본다면 최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것이 "과열"이라면 은행들은 적절한 시기에 자율적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정권말기·선거를 앞두고 재경부가 내놓는 분석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은행들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금융권은 자체적으로 각종 경제현상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경영전략을 세운다. 오히려 정부에 비해 더 냉정히 상황을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윤이 줄고, 경쟁에서 져 결국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가계대출 확대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요즘은 정말 CEO와 경영진의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이 중요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