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꿈틀거리는 서울[땅의 이름은]

<서울편>
풍수지리상 수태극 전형으로 용의 기운 받는 천하명당 서울
용이 승천한 동대문 용두동, 용의 머리가 놓인 마포 용강동
용 상징하는 왕이 기거하는 창경궁·창덕궁은 와룡동
  • 등록 2023-09-16 오전 10:00:00

    수정 2023-09-16 오전 10:00: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서울 중랑천은 하류로 갈수록 수심이 얕고 폭이 좁아 빠르게 흘렀다. 치수 사업으로 천변 풍경은 과거와 변했지만, 지금도 한강에 맞닿는 여울목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특성을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여울목에서는 용이 승천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성동구 금호동과 성수동을 잇는 용비교(龍飛橋·용이 날음)는 이렇게 명명됐다.

용 형상.(사진=게티이미지)
용비교에서 중랑천을 거슬러 상류로 가면 나오는 동대문구 용두동(龍頭洞)도 마찬가지다. 용두동은 과거 북악산부터 아차산까지 이어지는 중간에 놓인 구릉에 자리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 뒷산이 용을 닮았고 종로로 향한 마을 입구는 용 머리에 해당했으므로 용두마을이라고 부른 게 지금까지 이어진다.

용두마을에 있는 찬물내기 우물은 용이 승천했다는 구전이 전해진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동대문께에 제단 선농단을 세우고 매해 경칩이 지나면 기우제를 지냈다. 태조가 선농단으로 가던 길에 용두마을에 들러 찬물내기 물을 마시고 감탄했더니, 우물에서 용 두 마리가 승천했다는 것이다. 용을 마주한 태조는 가마에서 내려 예를 갖추고서 극진한 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용비교와 용두동, 모두 물과 용이 지명에 얽힌 데에는 풍수지리와 연관이 있다. 서울은 풍수지리상 물을 빌려서 용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명당으로 꼽힌다. 한양은 북한산→북악산→안산→남산으로 이어진 산줄기에 에워싸여 있고, 도성에서 발원한 청계천은 동쪽으로 흘러서 한강과 만나고 한강은 서쪽으로 흘러갔다. 산과 물이 굽이쳐 하나의 태극 모양을 이루는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은 풍수지리의 길지에 해당하고, 서울이 여기에 해당했다.

수태극은 용의 힘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묶는 결정이었다. 그 끝자락에 마포가 위치한다. 마포는 조선 시대 수상 교통과 무역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호수가 세 개 있어서 삼개, 이게 변형돼 마포강으로 불리던 것이 현재 마포로 이름 붙었다. 마포강은 풍수지리상 용의 머리에 해당해 용강이라고 불렀다가 지금의 마포구 용강동(龍江洞)으로 남았다.

물을 다스리는 데에 용을 끌어와 지명을 지은 데에서 용의 상서로운 힘에 기대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농본사상을 따르는 농업국가 조선은 수해와 가뭄을 막는 게 국가 제일의 대사였다. 그러나 치수는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의 오방토룡제에 다섯 마리 용이 등장하는 것을 짐작할 만하다. 오방토룡제는 열 번을 실패하고 열 한번째 지내는 기우제였다. 그만큼 절실한 의식이었다. 이때 한양 동서남북과 중앙에 다섯 제단을 세우고 토룡단(흙으로 빚은 용의 형상)을 두어 제를 올렸다. 앞서 태조가 용두동을 지나가던 당시는 동쪽에 있는 선농단에 기우제를 지내러 가던 차였다.

곤룡포를 입은 세종의 영정(사진=문화재청)
이렇듯 용은 내세운다는 것은 왕이 나선다는 의미였다. 용은 왕을 상징한 탓이다. 조선 시대 왕이 집무를 볼 때 입던 의복 곤룡포에 용을 수놓고, 왕의 얼굴을 용상(龍像)이라고 하며, 업무를 보던 자리를 용상(龍牀)이라고 불렀다. 종로구 와룡동(臥龍洞)이 이름 붙은 것도 비슷하다. 와룡동에 있는 창경궁과 창덕궁은 조선의 왕이 기거하던 궁이었다. 용(龍)이 눕는(臥·엎드릴 와) 곳이라는 의미에서 와룡이라고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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