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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택시장 폭락에 베팅했던 금융맨들을 다룬 영화 ‘빅쇼트’에서 크리스천 베일이 맡은 배역이 바로 마이클 버리입니다.
당시 ‘사이언 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를 운영하고 있던 버리는 주택시장 버블이 꺼질 것이란 확신을 갖고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등 투자은행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투자은행에 본인 ‘맞춤형’ 금융상품을 판매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때 제안한 상품이 바로 신용부도스와프(CDS)입니다.
CDS는 망하는 것에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마이클 버리의 예를 들어볼까요. 그는 미국 모기지 채권과 관련한 CDS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모기지 채권이 휴짓조각이 되면 버리가 돈을 법니다. 일단 모기지 대출이란, 우리로 치면 주택담보대출입니다. 집을 살 때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돈(대략 집값의 70~80%)을 빌려 산 뒤, 나중에 천천히 이자와 함께 갚을 수 있게 하는 금융상품이죠.
이 모기지 채권이 부도나기 위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대출금 상환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져야 합니다. 주택시장 버블로 인해 은행권이 감당하기 힘든 규모로 대출금액이 커졌다고 본 버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매달 거액의 프리미엄을 내면서도 모기지채권 부도에 베팅한 겁니다.
가령 이렇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나라 정부가 발행한 국고채 3년물을 1억원어치 샀다고 칩시다. 그 경우 여러분은 이자수익을 기대하겠죠.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국고채에 대한 이자수익은 보장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그래서 채권 이자고 원금이고 갚아줄 능력이 없어진다면? 여러분은 이자수익은 물론 1억원을 그 자리에서 날리게 되겠죠.
이 때문에 채권이 부도가 났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누군가 보장해줄 수 있는 보험을 들고자 하는 수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매달 보험료를 내더라도 보험을 드는 편이 안전하다는 거죠.
그 때 보험처럼 들 수 있는 상품이 CDS입니다. 물론 매달 보험료는 내야 합니다. 그걸 CDS 프리미엄이라고 부릅니다. 채권이 부도가 날 확률이 증가하면 CDS 프리미엄도 오릅니다. 가령 국고채 3년물에 대한 CDS를 구입한 경우, 우리나라가 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한국물 CDS 프리미엄이 상승한다는 겁니다. 자주 사고를 내는 운전자는 자동차 보험료가 비싸지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금융상품인 CDS가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국물 CDS 프리미엄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죠.
16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전거래일인 지난 17일(현지시간) 한국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35.22bp로 집계됐습니다. 전날인 16일(34.90)만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이후 최저치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한국 경제도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와중에 한국의 부도위험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경제가 나쁘다지만 나라가 망할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또 북한 리스크나 미·중 무역전쟁도 완화되는 추세이고요.
특히 북한과의 관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평가이고요, 경제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CDS 프리미엄은 우리 경제가 심각하게 휘청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작아졌다는 걸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