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SK경영경제연구소 연구위원]1999년 동아일보 주최로 ‘체험! 인터넷 서바이벌99’라는 이름으로 5박6일 120시간 동안 호텔이나 아파트에 갇힌 채 오직 PC 1대와 현금 100만원이 든 통장 및 신용카드로 생활하는 인터넷 생존게임이 열렸다. 당연히 참여한 5개 팀 모두 아무런 문제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후 2010년에는 BBC 방송국이 한국에서 ‘인터넷 없이 일주일 살기’를 실험했다. 불과 11년 만에 정 반대의 행사가 열린 것이다. 10년간 한국의, 아니 전 세계의 인터넷 인프라와 서비스는 ‘있어도 그만’에서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넷으로 1주일을 살 수 있나’에서 ‘인터넷 없이 1주일 삶이 가능한가’로 180도 다른 행사가 열린 배경이다.
그렇다면 또 10년이 지난 2020년의 현주소는 어떨까.
지금은 코로나19로 비자발적 재택근무, 강제 재택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전 세계가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집에 격리된 채 1주일이 아닌 1개월 넘게 생활이 가능한 것일까. 아니 생활을 넘어 경제활동, 사회활동이 가능한 것일까.
이미 인터넷만으로도 1주일 넘게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20년 전 증명이 되었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살 수 있음을 체험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을 이용해 주문할 수 없는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것도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더 편리하게 구입이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일하고 수업을 들으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온라인 기술이 발전해도 직접 같은 공간에 모여서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각자의 작은 감정을 파악하는 것을 따라갈 수는 없다.
구글 스칼라(Scholar), 줌(ZOOM), 슬랙(Slack)과 같은 툴이 제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오프라인의 경험을 100% 흉내 낼 수는 없다. 물론 오프라인이 주지 못하는 효율성을 온라인이 주는 것도 있다. 온라인으로 연결한 모든 이력은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되어 언제든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화상 카메라로 잡혀 송출되기 때문에 회의 중 한 눈 팔기도 어렵다. 수십 명 넘는 학생들의 출석도 한 번에 체크할 수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데 온라인은 모든 참석자들의 의견을 수집하고 집계하기 쉽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의 스킨십으로 얻게 되는 직관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온라인이 메워주긴 어렵다. 그렇다 보니 1개월 넘게 재택근무, 재택수업이 이어지면서 기업과 학교의 고민은 날로 커져 가고 있다.
| 유튜버들이 실시간 쌍방향 영상 소통 플랫폼 ‘줌’을 이용해 각자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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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기술의 진화는 늘 그래왔듯이 생각보다 빠르다. 기업을 위한 온라인 협업 툴과 교육을 위한 혁신적인 에드테크(Edtech·인터넷 등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한 교육 서비스)가 현장의 아쉬움을 메워주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아 피치 못하게 강제 격리가 길어지거나 의외의 경험 속에서 온라인을 통한 사회생활의 편리성과 강점이 부각된다면 기술은 온라인 사회생활의 부족한 점을 해결해나가는 쪽으로 빠르게 발전해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홀로렌즈 등의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과 인공지능(AI)이 온라인을 통해 좀 더 업무와 학습을 생산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회사와 학교에 가는 것은 일과 공부를 하기 위함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 외에 함께 떠들고 마시고 놀고먹기 위한 목적도 있다. 기술은 온라인 회의와 교육을 보다 효율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재미있게 놀고 잘 떠드는데 기술이 기여할 것이 있을지, 아니 그럴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일만 하고 공부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집에 감금된 현실에서 온라인만으로 어떻게 재미를 찾고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온라인 게임을 하는 10대 아이들을 보면 게임을 하면서 디스코드(Discord)라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게임에 참여한 친구들과 게임 하는 내내 통화를 한다. 오래 전부터 비대면 근무를 해온 한 스타트업은 줌을 회의가 아닌 커피 한 잔 들고 서로 잡담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유튜버 중에는 친한 친구들과 각자 집에서 카메라를 열고 서로 얼굴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엄청난 기술이 동원되는 건 아니다. 현재 있는 온라인 서비스만 제대로 알고 이용해도 충분하다. 즉, 언택트(untact·비대면) 시대 소통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인지와 의지의 문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오프라인에만 적용되는 것일 뿐 온라인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못하면 친밀함의 유지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재 주어진 기술 수준만으로도 온라인에서 충분히 교감을 나눌 수 있음에도 그럴 시도를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
재택근무와 재택수업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실 동료들과의 동질감 유지와 친구들과의 유대감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는 기술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으로 ‘사회적 곁에 두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