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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하영·김소연 기자] “인건비를 동결해도 (재정난을) 감당할 길이 없어 실험·실습비까지 줄이고 있습니다.”
수도권 A대 총장의 하소연이다. 지난 10년간 등록금 수입이 감소하면서 교육·연구와 직결되는 부분까지 손대고 있다는 의미다. 그나마 수도권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지방의 대학들은 “학교 돈으로 연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교수 연구비까지 줄이고 있다.
대학정원 11% 감축, 등록금 수입 감소
대학의 재정난 악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한 대학 구조개혁에 따라 2013년부터 올해까지 일반대학·산업대학·전문대학의 학부 입학정원은 11.3%(6만1410명)나 줄었다.
입학정원 감축은 등록금 수입과 직결된다. 학생 1인당 연간 등록금을 700만원만 잡아도 200명을 줄이면 연간 14억 원의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말 발간한 ‘사립대학 재정 현황’ 국감자료집에 따르면 2013년 8조3433억원이던 사립대 등록금 수입은 2017년 8조522억원으로 2912억원 감소했다. 등록금 수입이 대학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6.4%에서 43.3%로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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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등록금 인상을 억제해온 탓에 대학의 재정난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경북 B대 기획처장은 “인건비와 시간강사 강의료, 캠퍼스 관리비, 전기료, 청소용역비, 노후건물 리모델링 등은 경직성 경비라 줄일 수 없다”며 “2012년부터 교수·직원들의 인건비를 동결해왔지만 재정난 탓에 적립금마저 털어 쓰고 있다”고 했다.
대학 재정난, 교육·연구 질 하락으로 이어져
문제는 대학의 재정난이 연구·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A대 총장은 “3년 전부터 매년 20억~30억씩 적자를 보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전체 교수 중 17%를 비정년트랙(계약직) 교수로 채웠다”고 했다. 대학에서 전임교수는 정년트랙(정규직 교수)과 비정년트랙(계약직 교수)으로 구분된다. 정년트랙은 `조교수→부교수→교수`로 이어지는 승진 단계를 밟게 되며 정년 보장도 가능하다. 반면 비정년트랙 교수는 승진·정년보장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계약직 신분이다. 연봉도 사립대 정교수(지난해 기준 9630만원)의 3분의 1인 3000만원대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교육부가 나서 계약직 교수의 연봉이 3099만원(일반대학 기준)에 미달할 경우 대학평가에서 감점을 주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실험실습비를 줄이는 대학도 늘고 있다. 경기도 C대학 총장은 “지난해에는 학과마다 연구기자재 구입비와 실험실습비를 5%씩 줄이기로 했다”며 “교육이나 연구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왔지만 10년간의 등록금 동결로 삭감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교수 1인당 연구비 40% 삭감하는 대학도
충남지역 E대학은 4년 전 교수 1인당 연구비 규모를 40%나 줄였다. 교수들이 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논문 1편을 발표할 때마다 격려차원에서 지원하던 연구비 250만원을 150만원으로 삭감한 것이다. E대학은 내년 8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좌 수까지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대학 총장은 “교수들의 연구비를 4년 전에 한 번 줄였지만 재정난이 심화하면서 내년에 한 차례 더 삭감할 생각”이라며 “시간강사 강의료도 계속 올라 내년 신학기를 앞두고 개설 강좌는 20% 정도 축소하려고 한다”고 했다.
`신(神)의 직장`으로 불렸던 대학 직원도 재정난 탓에 근무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B대 기획처장은 “교직원 3명이 정년퇴직하면 2명만 신규 채용하고 있다”며 “5년 전만해도 350명이었던 대학 직원 수가 지금은 270명으로 20% 이상 감축됐다”고 했다. 서울 한 사립대 직원도 “예전에는 팀장급만 겸직을 했지만 요즘은 실무 직원에게도 겸직을 맡기고 있다”며 “학생 취업교육이나 해외연수 지원업무는 직원이 담당하고 있어 신규채용을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구·교육실적이 뛰어난 교수를 영입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한 지방 사립대 기획처장은 “뛰어난 교수를 영입하려 해도 국책연구소나 사기업에 비해 연봉이 낮아 오지 않으려 한다”며 “원하는 인재를 뽑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교육부는 2009년부터 법정 한도와 관계없이 대학 등록금 동결·인하를 압박해 왔다. 대학 등록금은 고등교육법상 최근 3년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 인상이 가능하지만 국가장학금 지원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인상을 억제하고 있다. A대학 총장은 “최저임금·강사료 등 매년 인건비가 오르고 있지만 등록금만 제자리”라며 “대학 재정난은 이미 임계점에 와 있다. 등록금을 법정 한도까지 올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