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구석기시대에도 이토록 푸르렀을까

시간 빚은 예술품 보러 가볼까…경기 연천
언 물살에 세월 멈춘 재인폭포
주변 성벽같은 주상절리 펼쳐져
고대사 다시 쓰게 한 '구석기유적
고대산 폐터널 천장서 떨어진 물
수백개 '역고드름' 만들어내
  • 등록 2016-01-15 오전 6:15:00

    수정 2016-01-15 오전 6:15:00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 한탄강 주상절리를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일반적인 폭포와는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들어서 있는 게 특징. 한겨울 재인폭포는 얼어붙은 물살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기의 최북단인 연천은 서정적인 시골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드넓은 평야와 넓고 깊은 강, 맑은 계곡이 있어 겉으로만 보자면 이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 없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보면 연천은 한반도의 꿈틀거리는 역사 그 자체다. 한반도의 지질변천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고, 서구문명의 우월주의를 대표하는 ‘구석기 이원론’을 뒤집은 대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고, 삼국시대에는 전쟁의 땅이었다. 전쟁의 비극은 지금까지 이어져 남·북으로 서로 대치하며 긴장하는 세월이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억겁시간이 빚은 예술과 조우

조산 활동이 활발했던 신생대 4기(약 170만~1만년 전). 철원에서 평강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지방에는 현무암질의 용암이 분출해 용암대지를 이뤘다. 이후 하천에 의해 침식하면서 추가령에서 전곡리에 이르는 120㎞의 주상절리대를 형성했다. 연천의 임진강과 한탕강~차탄전의 주상절리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는 길이 1.5㎞의 거대한 주상절리가 임진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한눈에 보이는 길이만 1.2㎞여서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주상절리 하면 제주 서귀포시 주상절리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두 곳의 주상절리는 좀 다르다. 서귀포 주상절리는 바다 위로 솟은 육각형 모양이 뚜렷한 데 비해 임진강 주상절리는 칼로 내리친 듯한 직벽이다. 몽글몽글한 돌이 끝도 없이 깔린 강변에서 거대한 성벽처럼 버티고 선 주상절리를 보고 있으면 자연의 위대한 창조활동에 경외감이 와락 생긴다.

주상절리를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재인폭포다. 재인폭포의 지형은 한탄강과 비슷하다. 일반적인 폭포와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들어서 있다. 쉽게 말해 땅이 꺼진 곳으로 물이 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폭포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 정식명칭으로는 추가령구조곡이다. 규모도 거대하다. 너비가 30m에 달하고 높이는 18.5m에 이른다. 여름에는 시리고 맑은 물살을 토해내지만 지금 같은 한겨울에는 물살이 얼어붙어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하다. 재인폭포 주변의 기암은 주상절리다. 용암이 식는 과정에서 생긴 6각형 모양은 과거 화산 분출의 흔적이다.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 한탄강 주상절리를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일반적인 폭포와는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들어서 있는 게 특징. 한겨울 재인폭포는 얼어붙은 물살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고대사 바꾼 ‘전곡리 주먹도끼’

3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의정부·덕정·동두천을 지나 한탄강 다리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면 정면으로 보이는 은빛건물이 마치 우주선 같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입구바닥에 800만년 전이라고 쓰인 것을 보면서 이곳이 까마득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2011년에 개관한 경기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은 이렇게 관람객을 맞이한다.

박물관의 애칭은 ‘돌박’이었다. 돌을 주인공 삼아 만든 박물관이라는 의미다. ‘대표 돌’은 주먹도끼. 정확하게는 ‘양면 가공 주먹도끼’다. 전곡리 유적지에서 주먹도끼를 발굴한 것은 세계 고고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지역에는 이런 유물이 없다고 믿었던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고고학자인 할렘 모비우스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한 ‘구석기 이원론’을 이전까지 정설처럼 받아들였던 때였다. 모비우스 교수는 “구석기문화는 인도를 경계로 발달한 형태의 석기인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사용한 유럽-아프리카 지역과 단순한 형태의 ‘찍개’를 사용한 동아시아지역으로 나뉜다”고 규정했다. 말 그대로 구석기시대부터 서구문명이 아시아문명보다 우수했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은 게 바로 전곡리 주먹도끼다.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사람들이 돌에 약간 멋을 부리고 여러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변형해 기술혁신을 일으킨 것이 바로 주먹도끼”라며 “당시로는 산업혁명 이상의 혁명적인 전환이었다”고 덧붙였다.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주먹도끼.
전곡선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매머드 화석.


◇백제·신라·고구려가 탐내던 땅 ‘연천’

연천은 전쟁의 땅이다. 가장 앞선 전쟁은 1500년전인 삼국시대에 임진강을 끼고 벌어진 전투.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한치의 양보없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이후 신라·백제연합군에 밀려 한강지역에서 패퇴한 고구려가 임진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당시 전쟁의 흔적은 임진강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 등 고구려성이다. 6∼7세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찼던 최전방 전투 요새였다. 성은 예외없이 모두 임진강의 본류와 지류의 작은 하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굳이 이곳에 성을 쌓은 것은 지류에서 밀려온 토사로 강바닥이 높아져 여울을 이루는 자리를 방비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은 조용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남아 있다. 모두 강가 높은 둔덕에 세워져 있어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 물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둘러보기에는 이 중 복원이 잘 돼 있는 당포성이 좋다.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지대 절벽 위가 성이다.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에 터를 잡아 임진강 남쪽 백제와 신라의 공격을 방어했다. 성곽에 오르면 시원한 임진강 풍경과 강 너머 파주와 동두천의 산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구려 세 개의 성 중 규모가 가장 큰 건 호로고루성이다. 연대급의 병력이 주둔하던 최전방 사령부였다. 임진강변 주상절리의 직벽 위에 세워진 호로고루성은 자태부터 우람하다. 또 은대리성은 주변 소나무숲과 삼형제 바위의 경관이 근사하다.

연대급 고구려 병력이 주둔했던 ‘호로고루성’.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다.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 이곳에 기막힌 반전이 있다. 바로 ‘아래로 자란다’는 자연의 법칙을 뒤집는 ‘역고드름’이 주인공이다. 역고드름이 자란다는 사실은 2005년 마을주민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길이 100m, 폭 10m의 터널바닥에는 역고드름 수백개가 솟아올라 있는데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보통 12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볼 수 있다.

역고드름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이 터널이 건설된 건 일제강점기 말기. 당시 경원선으로 사용하던 연천터널의 일부였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졌고, 인근 백마고지에서 격전이 벌어지자 인민군이 탄약고로 이 터널을 활용했는데 미군이 대대적인 포격을 퍼부었다는 것. 그 포격에 금이 가면서 겨울이면 물이 떨어졌고, 고드름이 아래에 쌓여 위로 자란다는 얘기다.

천장에서 한방울 한방울 땅에 떨어진 물방울이 오랜 시간을 거쳐 한폭의 수묵화를 만들어냈다. 위에서 아래로 자라는 뾰족한 고드름과 달리 여기 역고드름은 땅에서 올라오는 버섯과 양초 같은 다양한 기둥모양을 갖췄다. 터널 안팎의 온도 차이로 생긴 자연의 조각품인 셈이다. 터널입구는 마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의 입 같은 모습이다. 위·아래로 달린 고드름이 가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에서 ‘자란난’ 역고드름.


◇여행메모

△가는 길=경기 북부에서는 자유로를 타고 문산에서 빠져 전곡방향으로 가면 된다. 서울 동부권에서는 의정부를 거쳐 연천방향으로 간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송추 나들목에서 빠져도 된다. 의정부를 지나 3번 국도를 타면 된다.

△먹을 곳=참게와 메기, 빠가사리(동자개) 등을 넣어 끓여낸 매운탕을 잘하는 불탄소가든(031-834-2770)이 유명하다. 한탄강오두막골(031-832-4177)은 가물치구이와 민물새우탕이 유명하다.

△가볼 만한 곳=연천군은 오는 24일까지 ‘2016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를 연다. ‘전곡리 안의 겨울나기’를 주제로 한 축제에서는 ‘구석기 의상 만들기’부터 ‘주먹도끼 만들기’ ‘집짓기’까지 다양한 선사시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빙하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얼음나무숲·눈사람마을·얼음성벽·눈조각공원도 조성했다. 슬로프 길이 120m짜리 대형 눈썰매장도 있다. 스케이트 타기와 연날리기, 썰매대회와 빙어낚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총 500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대형 화덕에서 바비큐 요리를 즐길 수도 있다. 유적지 내 전곡선사박물관에서는 구석기 유물과 인류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 한탄강 주상절리를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일반적인 폭포와는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들어서 있는 게 특징. 한겨울 재인폭포는 얼어붙은 물살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경기 연천군의 재인폭포. 한탄강 주상절리를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일반적인 폭포와는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들어서 있는 게 특징. 한겨울 재인폭포는 얼어붙은 물살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에서 ‘자란난’ 역고드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에서 ‘자란난’ 역고드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에서 ‘자란난’ 역고드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에서 ‘자란난’ 역고드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에서 ‘자란난’ 역고드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의 폐터널에서 ‘자란난’ 역고드름.
전곡선사박물관 내부
불탄소가든의 민물고기매운탕. 참게와 메기, 빠가사리(동자개) 등을 넣어 끓여낸다.
한탄강오두막골의 가물치구이
한탄강오두막골의 민물새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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