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땜질식 행정에 4년마다 되풀이된 참사

  • 등록 2018-01-30 오전 6:00:00

    수정 2018-01-30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다.” 지난 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의 사상자 규모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현장에서 전해진 소식이다. 병원에 스프링클러가 없다니… 몇년 전엔가 화재 사고 이후로 의무화 되지 않았던가. 같은 날 세종병원 이사장은 병원이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기준에 미치지 않는 규모라고 밝혔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어도 법규에 위반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의무화했다는 기억은 어디서 잘못 입력된 것일까. 기록을 찾아봤다.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 설치 적용 대상이 아니다. 4년 전 사고와 판박이다.” “환자가 없는 별관 2층 맨 끝방에서 시작된 불은 방 전체와 천장을 모두 태우고 6분만에 초기 진압됐다. 그러나 병실에 퍼진 유독가스 때문에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환자가 대부분이었고, 병상에 손이 묶여 있어 대피가 어려웠다.”

언론 보도 내용이다. 날짜를 명기하지 않아 무심코 읽으면 마치 이번 밀양 참사에 대한 보도 같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요양병원’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2014년 5월 전남 장성에서 발생한 효사랑요양병원 사고의 문제점을 분석했던 기사들이다.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요양병원’이 ‘일반병원’으로 바뀌었을 뿐 참사가 발생한 병원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더 끔찍한 것은 2014년 당시에도 효사랑요양병원 화재사고가 4년 전인 2010년 11월 경북 포항 인덕요양원 화재와 판박이라고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2010년, 2014년, 2018년. 무려 8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화재가 대규모 참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병원 구조는 그대로다.

정상인보다 화재 대피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환자들이 있는 병원은 층고나 면적이 관계없이 스프링클러, 배연·제연 시설이 설치토록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0명이 사망한 2010년 인덕요양원 화재 때 처음 문제가 제기됐다. 사고 이후 건물 면적과 관계없이 노인 장애인 요양시설에 간이스프링클러 등 화재 진압 설비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배연·제연 시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21명이 사망한 2014년 효사랑요양병원 화재가 나고 요양병원도 의무 설치 대상이 됐다. 밀양 참사가 났으니 일반 병원도 규모와 관계없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강화될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밀양 화재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나오게 된 환자들의 결박 문제도 2014년 효사랑요양병원 화재때 제기됐던 것이다. 이후 복지부는 요양병원 환자 결박에 대한 기준은 마련했지만 일반병원은 또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천 화재 참사 이후 전국에서 목욕탕과 찜질방에 소방점검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화마는 여관으로 병원으로 옮겨 다녔다. 사회 곳곳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화재·안전 취약시설이 너무나도 많다.

다행히 이번에는 정부가 병원 화재가 아닌 국가 안전점검을 한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월 5일부터 3월말까지 국가 안전점검을 통해 전국의 취약시설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종합적인 안전대책을 보강하겠다고 29일 밝혔다.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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