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블록체인으로 일자리 만들기

주요 선진국 암호화폐·블록체인 규율 법률·기준 마련
규제제도 미비로 국내 거래소 해외로 이전 야기
정부, 합리적 규제 도입으로 블록체인 스타트업 지원 필요
  • 등록 2018-11-23 오전 5:00:00

    수정 2018-11-23 오전 5:00:00

[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최근 통계를 보니 청년실업률이 8.8%, 청년실업자의 수가 37만 8000명(올해 9월 기준)에 달한다고 한다. 고도성장기에 대기업이 고용을 책임지고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기는 이미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한참 일할 나이의 청년들이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실업자가 돼 그나마 안정적 직장이라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바늘구멍을 통과하려 애쓰고 있다.

더 이상 기업이 충분한 고용을 창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부로서는 공무원을 많이 뽑거나 어떠한 형태로든지 청년 창업을 최대한 장려하는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것이 장기적으로 보다 바람직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작년에 암호화폐 투자 열풍으로 청년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가즈아”를 외치며 나서 한국의 암호화폐 시세를 국제 시세보다 10~20% 올려놓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은 결국 한국 정부의 암호화폐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가 2017년 9월 모든 형태의 가상화폐공개(ICO)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1년이 넘는 동안 암호화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법률적 근거와 규율을 도입하고자 했던 의원입법 4건은 하나도 통과되지 못한 채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암호화폐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취급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전에 이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을 규율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던 미국과 일본의 경우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1년 사이에 프랑스는 ICO를 합법화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한 법률을 통과시켰다(2018년 9월). 독일연방금융감독청(BaFin)은 올해 2월 ICO에 대한 규제 기준을 발표했다.

오래 전부터 크립토밸리(암호화폐 도시)로 각광을 받던 스위스, 싱가포르는 허용되는 ICO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금융감독당국이 기업들에게 합법적인 ICO를 진행하기 위한 친절한 조언을 제공하면서 증권형 토큰의 ICO까지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스토니아, 몰타, 지브롤터, 케이만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들은 매우 진보적인 입법과 정부의 공격적인 유치 노력을 통해 ICO를 진행하고자 하는 블록체인 업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미래를 위한 규제를 도입하지 못한 채 오히려 퇴보하고 있던 그 1년여 사이에 작년까지 세계 거래량 1·2위를 다투던 우리나라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중국과 홍콩의 거래소들에 밀려 한참 뒤의 순위로 주저앉았다. ICO를 계획하고 있었던 국내의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모두 싱가포르, 스위스 등 외국으로 나가 외국의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컨설턴트들에게 수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문료를 지급하면서 ICO를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거액의 자문료도 자문료이지만, 해외에서 ICO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에 재단이나 회사를 설립해야 하고, 상당수의 해외 입법례에서 그 재단이나 회사의 임원 중 1인 이상이 해당 국가 국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해당 국가의 사람까지 취직을 시켜주는 결과에까지 이르고 있다. 단순히 ICO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정부가 선언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래 우리나라에서 설립됐어야 할 회사가 외국에 설립되고 우리나라에서 고용되었어야 할 인력이 외국에서 고용되며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어야 할 천문학적인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외국에서 ICO를 진행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기업이 올해에만 100개에서 200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비효율은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규제가 도입되는 순간 제거될 수 있다.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통해 무엇이 되고 안 되는지를 명확하게 하여 시장 참여자들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는 정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달라는 것이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지난 10월 ‘블록체인 산업의 고용파급효과 분석 연구’라는 발표에서 블록체인 산업은 2022년까지 최대 17만개, 보수적으로 잡아도 6만개 정도의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이런 예측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이미 150여개에 달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한 곳당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스위스의 시골 소도시인 주크(Zug)가 크립토밸리가 되면서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합리적인 규제의 도입으로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에 날개를 달아준다면 이러한 스타트업들의 성장은 수많은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스타트업 창업의 선순환 고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달 정부가 ICO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규제가 도입돼 인력과 자본의 불필요한 해외 유출을 막고 우리나라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큰 날개를 달아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조정희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제31기 수료 △서울지방변호사회 국제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스타트업 규제혁신특별위원회 위원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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