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 결국은 증세…탄소세 신설·경유세 인상 '만지작'

연말까지 세제 연구용역, 탄소 가격체계 종합 검토
탄소세 도입시 多배출 업종 철강·정유 등 직격탄
경유세 인상·전기요금 개편시 소비자 부담 전가 우려
  • 등록 2021-01-20 오전 12:00:00

    수정 2021-01-24 오전 7:11:54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정부가 탄소중립, 기후변화 대응 피해 보전 등에 사용하는 기후대응기금 규모를 수조원대로 키우기로 하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금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최대 난제다.

정부는 수조원대 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탄소세 신설시 철강·정유업계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경유세를 인상하면 디젤 차량 운전자들과 화물·운송업계 부담이 커진다. 기금의 운영 주체와 사용처도 논쟁거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탄소중립선언을 하고 있다.이번 연설 중 일부는 탄소 저감의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해 컬러 영상보다 데이터를 덜 소모하는 흑백 화면으로 생중계됐다. (사진=연합뉴스)
“복잡한 에너지·환경 세제, 탄소세로 단순화”

1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1년도 업무계획에 따르면 탄소 중립 친화적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하고 탄소 가격체계를 검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안’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기금을 운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수조원대 기금 마련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후대응기금의 재원 조달 방안으로는 탄소세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기재부는 올해 연말까지 세제 연구용역을 통해 탄소세 등 탄소 가격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탄소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7일 온실가스 1t당 8만원의 탄소세를 과세해 확보한 재원으로 전국민에게 매달 10만원을 지급하자는 내용의 ‘기본소득 탄소세법’을 발의했다.

정부도 탄소 배출에 대한 가격 부과 방안을 검토해나갈 예정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7일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브리핑에서 “탄소세는 종합적으로 검토해 방침이 결정될 것”이라며 “세제 전반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탄소세 도입이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와 대응 전략’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원의 탄소함유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탄소세 도입 시 에너지 세제를 단순하게 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에너지 세제는 개별소비세, 교통·에너지·환경세, 자동차세, 지역자원시설세 등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 오염 배출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 적용이 미흡해 교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경유세 인상도 재원 마련 방법 중 하나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해 11월 중장기 국민정책제안 기자회견에서 수송 분야에서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을 100대 95 또는 100대 100으로 점진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530원(ℓ당)선인 경유세를 746원인 휘발유세와 맞추자는 것이다.

석탄발전을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를 확충하면서 전기요금에 단계적으로 환경비용을 50% 이상 반영하는 의견도 내놨다. 석탄발전 중심으로 짜인 전기요금을 개편하자는 취지다.

탄소중립 친화적 재정프로그램 개념도. (이미지=기획재정부)
재계 “탄소 중립도 버거운데…세 부담까지”

탄소세 도입이나 경유세 인상 등을 추진할 경우 증세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도 기업들은 경유세 등의 환경세를 부담하고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탄소 배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교통·에너지·환경세 신고세액은 14조8000억원에 달한다.

2015년부터는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시행 중이다. 이에 탄소세 도입이나 경유세 인상은 세금 부담이 늘고 이중 과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정부가 전반적으로 세제 체계를 검토할 예정이지만 탄소 배출이 많은 업종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들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시행할 예정인 탄소국경세 부담도 상당한 가운데 추가 비용 지출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기후변화 규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이들 3개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경우 철강·석유·자동차 등 주요 업종은 연간 6000억원 가량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비용은 2030년 1조87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탄소 중립 등 저탄소 경제 전환 정책을 따라가기 힘겨워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추가 세금 부담을 질 경우 기업들이 반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업종의 세금을 올릴 경우 국민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유류세 등이 오른다면 결국 소비자들의 기름값이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수조원대에 달할 기후대응기금의 운용 주체에 대해서도 ‘기 싸움’이 예상된다. 기금 재원을 충당하는 민간이 운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운용한다고 해도 기재부나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등 부처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주무부처를 어디로 정할지에 대해서도 협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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