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볼만한 뮤지컬이 없다.” 최근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뮤지컬 시장을 견인하는 대극장 작품 중 화제가 될 만한 기대작이 없어서다. 흥행작의 재공연이 주로 이뤄지고 신작마저 부족해 뮤지컬 시장이 활기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대학로로 시선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0~300석 규모의 중소극장을 무대로 한 창작뮤지컬에 관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뱀파이어·타임머신…독특한 시도로 관객몰이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7월 15일까지 아트원씨어터 1관)가 그 중심에 있다.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아 지난 3월 23일 개막한 ‘마마, 돈 크라이’는 지난 16일 71회 만에 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극장 전체 객석수가 약 300석임을 감안하면 거의 매회 매진을 기록한 셈이다. 평균 객석점유율도 90%를 뛰어넘어 폐막까지 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소극장 뮤지컬은 장사가 안 된다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깬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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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다소 황당하다. 완벽한 사랑을 얻기 위해 타임머신을 발명한 프로페서V가 드라큘라 백작과의 거래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는 설정의 2인극이다. B급 소재에 록 사운드가 가미된 마니아 성향의 작품이다. 13명의 남자 배우가 출연해 캐스팅별로 색다른 조합을 보여줘 재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김인혜 클립서비스 마케팅팀장은 “공연시간 100분 동안 무려 스무 곡의 넘버가 나오는 만큼 콘서트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설과 영화가 추리에 방점을 둔다면 뮤지컬은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극작과 작사를 맡은 정영 작가는 “원작 소설과 일본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와 닿았던 것은 인간의 고독이었다”며 “인간애가 기저에 깔려 있는 뮤지컬”이라고 소개했다. 작곡을 겸한 원미솔 음악감독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음악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시인 이상을 모티브로 한 ‘스모크’(7월 15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도 성공적인 재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대극장 뮤지컬에 주로 출연해온 뮤지컬배우 김소향이 주인공 홍 역으로 7년 만에 대학로를 찾아 화제다. CJ문화재단의 창작 개발 지원 사업 ‘스테이지 업’ 선정 작품인 ‘붉은 정원’(6월 29일부터 7월 29일까지 CJ아지트 대학로)도 개막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각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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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관객 중심 한계도
물론 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원 교수는 “대학로 창작뮤지컬은 대극장에서 하기 힘든 실험과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은 관객 흥행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 여러 실험과 시도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에서다.
다만 최근에는 대학로 창작뮤지컬도 흥행을 위해 ‘재관람률’을 높이려고 하다 보니 비슷한 형식으로 정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남자 배우가 중심인 작품이 많은 것이 대표적이다. ‘마마, 돈 크라이’가 2인극임에도 무려 13명의 남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이기도 하다. ‘용의자 X의 헌신’ ‘스모크’ 등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남성 2인극의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원 교수는 “흥행을 위한 정형화된 작품을 만들기 보다는 중소극장만의 생명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현재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호프’를 신작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공연기획사 입장에서도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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