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당뇨, 집에서 진단·처방…강원서 싹트는 원격의료

[규제혁신이 만드는 미래]③강원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 "원격 진단부터 처방까지"
누적 환자 700명 넘어…의료진·환자 모두 만족
"원격의료로 의료 사각지대 해소…규제완화 절실"
  • 등록 2021-07-29 오전 6:00:00

    수정 2021-07-29 오전 6:00:00

‘규제 완화’는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 정책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데일리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역별로 ‘덩어리 규제’를 풀어 지역산업 발전과 혁신성장을 촉진하는 ‘규제자유특구’를 직접 둘러보고, ‘규제혁신이 만드는 미래’라는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서초구 소재 의료기기 업체인 뷰노를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중기부)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2시간씩 걸려 병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서 편하게 약 처방을 받으면 됩니다.”

국내 첫 원격의료 실증사업이 이뤄지는 강원도 원주시 일대. 지난 2019년 7월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한 이곳에서는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 모니터링과 진단, 처방이 이뤄진다.

1차 의료기관과 협업해 고혈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비플러스 조재억 대표는 “교통이 불편한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는 고령 환자들이 제때 진료를 못 받거나 약을 처방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그러나 원격의료 실증사업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리하게 몸 상태를 확인하고 약까지 처방받을 수 있어 의사와 환자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원격의료 규제 풀자…환자 만족도·기업 성과 ‘쑥’

정부의 규제 완화를 통한 원격의료 실험이 싹을 틔우고 있다. 28일 중소벤처기업부와 강원테크노파크 등에 따르면 강원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 원격의료 실증사업에 참여하는 환자는 700명을 넘어섰다. 현행 의료법(17조·34조)이 금지한 개인-의사 간 원격의료에 실증특례를 부여해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자 상태를 원격 모니터링하고 내원 안내, 진단·처방을 수행한다.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한 모바일 헬스케어 기기를 환자에게 제공하면, 환자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매일 자신의 혈압·혈당 수치 등을 의사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의사가 처방을 내리면 휴대용 프린터로 집에서 전자처방전을 출력, 집 근처 약국에서 약을 받으면 된다.

특구 지정 당시에는 원격의료 안전성 논란과 함께 의료계와의 마찰이 불거지면서 실증 참여 의료기관은 1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이 원격의료 사업 활성화에 불을 지폈고, 현재는 병·의원 13곳이 실증사업 참여해 원격의료 안전성과 효용성을 검증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도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를 오르는 등산객에게 심전도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메쥬의 패치형 심전계 ‘하이카디’는 최근 유럽 CE 인증을 받았다. 이 같은 성과로 회사는 최근 9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유비플러스 역시 실증 참여 이후 연평균 매출이 약 40%씩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강원 특구 기업 22곳이 벤처캐피탈(VC)로부터 받은 투자금액은 총 295억원이다. 이는 전국 24곳 특구에서 받은 총 투자금액(909억원)의 32.4%를 차지한다. 조 대표는 “인공지능을 통한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와 블록체인 기반 개인 건강 데이터 관리, 인지장애 환자들을 위한 스마트 돌봄인형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건강 관리 제품 및 서비스를 계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강원 원주시 강원모바일헬스케어지원센터에서 이병헌 청와대 중소벤처비서관 주재로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 현장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료 사각지대 해소, 원격의료 규제 완화가 답”

이렇듯 강원 특구의 원격의료 실험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면서, 향후 의료법 개정을 통한 원격의료 규제 완화 필요성도 높아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긍정 의견이 62.1%로 나타나 부정 의견(18.1%)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국 중 칠레, 체코, 터키 등 5개국을 제외한 32개국에서는 원격의료를 허용한 상태다.

중기부는 강원 특구 성과를 토대로 지난달 원격 모니터링 ‘임시허가’ 전환을 추진했지만, 관계 부처인 보건복지부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임시허가는 법령 정비를 전제로 법 개정까지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로, 임시허가를 받으면 특구 밖에서도 사업이 가능해 원격의료 전국 확대도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중기부는 원격의료 실증사업이 끊김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실증특례 기간을 2023년 8월까지로 2년 연장했다. 올 하반기에는 원격 모니터링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을 국회와 추진할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원격의료는 지난 20여 년 간 법률 개정도 하지 못한 채 시범사업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규제자유특구 사업을 통해 안정성이 확인된 만큼,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라도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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