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그레이 칼라 <하>''일하는 고령자'' 맞아 공장도 변신중

설비 자동화·수시 검진·식단 개발 등 다양
“경험과 숙련+체력과 아이디어로 회사운영”
  • 등록 2006-02-02 오전 7:54:52

    수정 2006-02-02 오전 7:54:52

[조선일보 제공] 지난해 12월 1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시(市) 외곽에 위치한 티센그룹의 자회사 라셀슈타인사(社).

철강회사 특유의 육중한 외관과 달리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유치원 놀이방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눈발이 흩날리는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천장을 유리로 만들어 자연채광 효과를 한껏 높인 내부는 환했다. 두꺼운 철판을 얇게 펴는 설비들은 연한 녹색과 노란색 톤으로 도색돼 아이들이 뛰노는 거대한 정글짐을 연상시킨다. 30~40t이 넘는 철강 코일과 크레인·압연설비 등의 육중한 쇳덩어리 장치로 가득 찬 공장이지만 귀를 찢을 듯한 소음도, 기름냄새도 거의 없다. 한마디로 공장 인테리어에 돈을 들인 기색이 역력하다.
서비스 업체도 아닌데 왜? 인사담당 애시라프(Darius Ashraf)씨는 “고령화 시대에도 공장을 계속 돌리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투자”라고 말했다. 60세가 넘는 근로자도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장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돌아온 그레이 칼라(일하는 고령자)를 맞아 공장들도 변신 중이다. 젊은이와 신체조건이 다른 고령자가 안전사고 없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공장시설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다. 라셀슈타인사는 3년 전부터 고령자를 위한 각종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예컨대 고령자는 암이나 순환기계통 질병이 많고 청각·시력 저하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라셀슈타인사는 3년 전부터 혈압·청각·시각테스트를 수시로 실시하고 있으며, 사내 보건소를 따로 설치해 고령 근로자들이 언제든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구내 식당도 당뇨나 비만인 고령자들을 위한 식단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애시라프씨는 “작업 중인 근로자들 동작을 사진으로 찍어 분석한 뒤 어떻게 움직여야 가장 작업에 효율적이고 근로자 건강에도 좋은지 연구해 슬라이드 등을 통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모두 3년 전부터 본격화된 고령근로자를 위한 대비책”이라고 말했다.

취재 중에 공장 안으로 낮 근무 작업조장인 크레츠(58)씨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왔다. 깡마른 체구에 산책 나온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 공장 내 조명과 소음·색감 등을 고령자에게 맞춰 설계한 라셀슈타인사 신(新)공장 내부. 공장 환경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자 크레츠(58·사진 왼쪽)씨는 손에 든 빵을 들어보이며“집안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프랑크푸르트=염강수기자
“설비가 자동화돼서 육체적인 힘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경험과 숙련이 더 중요하죠. 우리 공장은 1970년대에 비해 생산은 2배나 늘었지만 인원은 당시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크레츠씨는 “우리 공장에서는 어떤 공정이든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과 체력이 좋은 젊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시스템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 인사책임자인 레온씨는 “고령노동자들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 못하면 결국 회사의 손해”라며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느냐는 회사의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염강수기자 ksyo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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