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포인트 논란 속 잠자는 '전금법'…소비자보호는?

선불 충전금시장 작년 9월 말 1조9900억
2014년 7800억원 대비 두 배 이상 늘어
선불충전금 보호할 소비자보호 방안 없어
  • 등록 2021-08-17 오전 7:00:00

    수정 2021-08-19 오전 10:25:03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결제 플랫폼 ‘머지포인트’가 포인트 판매를 돌연 중단한 가운데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머지포인트 본사에 환불을 요구하는 가입자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머지포인트는 가입자에게 대형마트, 편의점, 커피전문점 등 200여개 제휴 브랜드에서 20% 할인 서비스를 무제한 제공하는 서비스로 최근 인기를 끌었지만 갑자기 서비스를 중단하고 사용처를 대거 축소했다.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80만원만 내면 음식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100만원치를 쓸 수 있다.”

플랫폼업체 머지플러스가 내세운 머지포인트의 마케팅 수법이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총액에서 20%를 할인해주는 형태로 100만명에 달하는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현재 월간 이용자 수는 평균 68만 명, 월 거래 금액은 4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선불업자 허가도 받지 않고 영업을 해온 사실이 2년만에 드러나면서 ‘소비자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자금융시장이 커지면서 머지포인트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법 테두리 안에 있다 해도 엉성한 법망으로 인해 ‘소비자 보호’가 안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 속 덩치 커지는 핀테크…선불 충전금 위험 관리 필요

16일 국회 및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카카오페이, 네이버 페이 등이 소비자 편익을 주무기로 등장해 온라인 결제수단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전통적인 결제 수단인 현금, 수표, 카드 등을 넘어 신규 지급 결제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간편결제·송금 이용이 큰 폭으로 확대되면서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4년 7800억원이던 충전금 규모는 2016년 9100억원, 2019년 1조6700억원, 지난해 9월 1조9900억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이처럼 어마 무시한 선불 충전금을 가지고 전자금융업을 하고 있지만, 정작 파산 위험에 대비하지 않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6월 독일에서는 1위 핀테크기업 와이어카드가 19억유로(약 2조5300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것이 드러나 파산신청을 했고 그 피해가 이용자들에게 전가되면서 큰 문제가 됐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선불 충전금을 업체 자산과 분리해 은행 등 외부기관에 신탁하는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선불충전금은 고유자산과 분리해 은행 등 외부기관 신탁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또 즉시 신탁상품에 가입하기 곤란한 경우에 한해 지급보증보험 가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선불업자는 매 영업일마다 선불충전금 총액과 신탁금 등 실제 운용 자금 총액의 일치 여부를 점검하고 게시해야 한다. 불일치 시 금감원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가이드라인도 권고 수준인 상황이어서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용우 의원실은 하이플러스카드(2338억원), 티머니(2037억원), 이베이코리아(842억원), 쿠팡페이(693억원), SK커뮤니케이션즈 (143억원) 등이 이용자 자금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난 2월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머지포인트 사태처럼 선불충전금 문제가 발생했지만, 가이드라인 등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현재로 금융당국이 관리감독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용자자금보호조치 이행현황(단위 : 억원)(표=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금융위·한은 갈등 속…애꿎은 소비자 보호 ‘뒷전’

이 같은 선불 충전금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관석 더불어 민주당의원이 지난해 11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9개월 째 표류 중이다.

그 이면에는 지급 결제 권한을 놓고 금융위와 한은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빅테크 업체의 내부거래에 대해 금융결제원을 청산기관으로 두고 관리·수집한다는 조항이 중앙은행 고유의 지급결제 관리 업무를 침범한다면서 반발해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국회에 출석해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라며 개정안이 ‘빅브라더(개인 정보 감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에 대해 “조금 화가 난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금융위는 “빅테크 기업이 파산할 경우 내부거래를 파악하지 못하면 피해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금융위를 비롯해 핀테크 업계 역시 신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기 위해 전금법 개정안이 신속히 시행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머지포인트 사태를 계기로 전금법이 통과되기를 더욱 강렬하게 희망하게 됐다”면서 “전금법을 통해 선불식 충전금 사태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목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출신인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 후보자에게 쏠리고 있다. 그간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전금법 개정안을 두고 대치하면서 ‘밥그릇 싸움’을 벌어왔는데, 업계에서는 고승범 내정자가 갈등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 보호라는 대의는 없고,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지엽적인 문제로 논의가 지연되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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