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4년’…임신중절권은 표류중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절 대체법안無
의료보험 안되는 수술, 약물 접근권도 보장 안돼
‘위민온웹’ 방심위 차단…우회해도 한 달 이상 소요
“안전한 임신중절 위한 여성 선택권 보장돼야”
  • 등록 2023-06-07 오전 6:00:00

    수정 2023-06-07 오전 6:00:00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4년이 넘었지만 관련 법 손질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임신중절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병원은 물론,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절도 어려운 상황이다. 의료계와 여성계에선 공백 상태인 법 개정을 서둘러 접근권을 보장해야 위험한 선택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게티이미지프로)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 모자보건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은 현재 14건 계류돼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대체 입법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임신중절의 허용 범위와 기간 등을 놓고 정치권에서도 법안 발의만 할 뿐 제대로 된 논의를 않고 있다. 국민적 합의가 쉽지 않은 민감한 문제를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는 셈이다.

현재로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까지는 병원 수소문도 쉽지 않고 금전적 부담 역시 상당하다. 병원마다 임신 주수에 따라 비용은 적게는 100만원대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천차만별인 걸로 전해진다. ‘당연히’ 의료보험 적용은 불가능하다.

‘미프진’ 등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임신중절 약물 이용도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 의약품 지정에도 불구,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승인을 미루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여성들은 온라인을 통해 불법으로 약물을 거래하는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낙태약’, ‘낙태유도제’, ‘미프진’ 등을 검색하면 각종 개인 거래자나 불법 광고가 뜬다.

임신중절이 필요한 여성들은 90유로(한화 약 13만원)의 기부금을 내고 인권단체 ‘위민온웹’(women on web)에서 약물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지금은 막혀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21년 위민온웹이 약사법을 위반해 임신중절 약물을 배포한다는 이유로 접속 차단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19년에 이은 두 번째 차단으로, 현재 사이트 접근을 위해서는 우회 접속 프로그램(VPN)이 필요하다.

이데일리가 위민온웹을 이용해보니 VPN을 갖추고도 한 달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마트폰에 VPN 앱을 설치해 우회 접속 후, 약을 신청하면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질문지가 온다. 질문지에 답변 후 주소를 입력하고 기부금 입금이 확인되면 배송이 시작된다. 배송은 국제우편(EMS)으로 이뤄지며, 인도와 홍콩 등 각지를 거쳐 왔다. WHO의 권고안에 따르면 임신 12주까지는 여성의 약물 임신중지가 안전하며, 비용 측면에서도 외과적 시술보다 합리적이다. 하지만 4주 정도가 소모되는 만큼 빠른 초기 대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약품 접근이 제한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내에서도 여러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들은 위민온웹 차단 해제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4일엔 약사 172명이 미프진의 필수의약품 지정을 요구하는 다수인 민원을 식약처 제출했다. 또 여성계도 오는 15일까지 진정서를 모아 추가 민원 제출할 계획이다.

위민온웹 측도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불법 약물 사용 등 음성화를 막기 위해서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위민온웹의 한국지부 두누 활동가는 “여전히 임신중절이 의료 서비스로 여겨지지 않고 있으며, 낙태를 문란한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분위기에서 여성의 권리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민온웹을 통해서도 약물 사기를 당했다는 사례가 자주 접수되는데, 이러한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라도 합법화 등 관련 조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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