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인권연대가 주축이 돼 2015년 2월 문을 연 장발장 은행에는 이 같은 사연들이 넘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된 약 150여 년 전과 현재 한국의 상황이 다름에도 ‘현대판 장발장’을 떠올리는 사례가 심심치 않다. 장발장 은행에 따르면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감옥에 갇히는 사람들이 연간 4만 명에 달한다.
벼랑 끝에 내몰리자 순간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가 받은 벌금형을 감당할 수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셈이다. 같은 벌금 액수라도 당사자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벌금형의 무게감은 달라진다. 정부가 ‘현대판 장발장’을 돕기 위해 민영 장발장 은행의 운영비용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9일 청와대에서 이 같은 내용의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벌금 미납 ‘노역장 행’ 5년 새 20% 증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 벌금 미납으로 노역장에 유치된 사례는 △2012년 3만5449건 △2013년 3만5733건 △2014년 3만7692건 △2015년 4만2689건 △2016년 4만2668건으로 나타났다.
매년 증가 추세로 5년새 20.3% 증가했다. 5년간 연 평균으로 환산하면 3만8846건에 달한다. 현행 형법상 벌금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안에 현금으로 한번에 내야 하고 벌금 미납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동안 노역장에 유치한다.
하루 노역으로 탕감되는 금액은 통상 10만원이다. 2011∼2014년 전체 벌금형(확정 기준) 중 1000만원 이하가 99.7∼99.8%를 차지했다. 특히 500만원 이하가 전체의 97.1∼98.6%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노역장 유치 처분을 받은 상당수가 벌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은 경범죄자로 분석된다.
이처럼 벌금을 내지 못하는 빈곤·취약계층이 늘면서 장발장 은행도 ‘성업 아닌 성업’ 중이다. 은행이 출범한 지난 2015년 2월부터 이달 초까지 모두 3020명이 은행 문을 두드렸다.
지금까지 489명이 9억2051만원을 대출을 받았고 전액 상환한 70명을 포함해 247명이 대출금을 갚고 있다. 현재 상환액은 2억1388만원이다.
기존 은행과 달리 담보, 신용 조회, 이자가 없는 ‘3무(無) 은행’을 표방한다. 벌금 미납자들에게 최장 6개월 거치, 1년 균등 상환을 조건으로 최대 300만원을 지원한다. 대출 자금은 전액 시민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지금까지 4531명이 장발장은행에 7억4000여만 원을 기부했다.
文정부 “빈곤·취약계층 수혜 늘릴 것”
장발장 은행 지원 확대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서민 가정 경제의 파탄을 막겠다는 설명이다.
윤 위원장은 “벌금 수십만 원이 없어 노역장에 갇히는 민생고가 높다”며 “장발장법(벌금 등 분납제)과 장발장 은행을 강화해 분납·납부연기 대상자를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현행 제도에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장애인 등은 검사의 허가를 받아 벌금 분할 납부와 납부 연기를 할 수 있다. 다만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 집행사무규칙’에 규정돼 있어 법적 근거가 약하고 신청률이 높지 않다.
지난해 1월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대한 집행유예 도입 △벌금 분납과 연납 법제화 △신용카드사 등 납부대행기관을 통한 납부 방법 도입 등을 골자로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벌금제의 형평성을 위해 독일·스웨덴·핀란드처럼 같은 범죄라도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 액수를 달리하는 ‘일수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 위원장은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에 도입된, 소득비례에 따른 ‘차등벌금제(일수벌금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며 “고소득자에 많은 벌금을, 저소득자에 적은 벌금을 부과해 재산에 따른 벌금납부 형평성 문제를 시정하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