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에 치이고 트럼프 리스크에 맞을라…안정보다 경기부양

한은 금통위, 기준금리 25bp 내리며 연 3.0%
'동결' 소수의견 2명…이창용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결정"
3Q 성장률쇼크 '구조적 원인' 탓…美정책 불확실성 커
가계부채·환율변동성 확대 우려에도 성장동력 훼손될라
  • 등록 2024-11-29 오전 5:32:18

    수정 2024-11-29 오전 5:32:18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성장의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결정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8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에 이어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25bp(1bp= 0.01%포인트) 인하한 배경으로 ‘성장률 방어’를 손꼽았다. 금리 인하를 통해 성장률을 방어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환율 부담에도 성장 방어 나서…15년만에 ‘연속 인하’ 결단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00%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지난달에 이은 ‘연속 인하’로, 금통위가 2회 이상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이후 15년여 만이다. 이번 금리 결정에선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인하를, 2명(장용성·유상대 위원)은 동결 의견을 제시했다.

이창용 총재는 “인하와 동결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올해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이번 회의는 역대급 난이도로 평가됐다. 회의 전 시장 컨센서스는 ‘동결’이었다. 국내 주요 증권사와 연구원은 지난달 어렵게 금리 인하의 첫발을 뗀 금통위가 이번 달에는 ‘쉬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10월에 재차 확대한데다 1400원대를 두고 등락하는 원-달러 환율도 부담 요소로 꼽혔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이 커지는 점도 동결 전망에 힘을 실었다.

(자료= 한국은행)
실물 경기에 충격이 오지 않는 한 연속 인하 결정에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한 금통위가 이례적으로 연속 인하를 단행하게 된 이유는 경기 하방 리스크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서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경쟁이 심화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국의 정책 변화로 수출 경기 자체가 위축될 위험이 큰 상황이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3분기 수출 물량이 예상보다 둔화한 이유를 검토해 보니 일시적 요인보다는 경쟁국과의 수출 경쟁이 심화하는 구조적인 요인이 컸다”며, “미국 대선 결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책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총재는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는 이른바 ‘레드 스윕’(Red Sweep)은 예상하지 못한 큰 변수였다고 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친기업 감세, 고관세, 이민자 추방 정책 등이 현실화와 이로 인한 세계 및 국내 경제의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과 후년 경제 성장률을 각각 1.9%, 1.8%로 전망하며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이 아니라 성장 잠재력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 측은 기준금리 25bp 인하가 성장률을 0.07%포인트 정도 올리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총재는 내년 초로 예상됐던 국내총생산(GDP)갭(실질 GDP와 잠재 GDP 간의 차이) 플러스 전환이 내년 연말 이후로 지연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금통위는 28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한 연 3.00%로 결정했다. (사진= 한국은행)
전문가들 “내수 부양, 통화정책만으론 안돼”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은의 이번 금리 인하가 성장률 둔화가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내수 부양을 위해선 정부의 재정정책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위원은 “내수 부양을 하려면 금리 정책으론 한계가 있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 등 재정정책을 같이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금리 인하는 내수 부양보다는 수출에 대한 대책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관세를 높이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통한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쪽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사회 구조 개혁 등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자체가 떨어진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에 따른 성장률 제고 효과는 현 상황에서는 크지 않을 수 있다”며 “단기 처방은 될 수 있어도 장기 성장을 위해선 구조조정, 체질 개선과 함께 실질적인 성장 동력으로 돈이 흘러가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도 잠재성장률 하락을 언급하면서 “여러 가지 구조조정을 통해 장기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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