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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수반한 혁신이 강조되는 초(超)혁신 시대, 대한민국이 위기다.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 ‘초융합’은 기존 산업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면서 기업들에게 혁신을 뛰어넘는 ‘초혁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에 발목 잡힌 우리 기업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
지난해 CB인사이트가 선정한 인공지능(AI) 100대 스타트업에 이름을 올린 한국 업체는 의료 영상진단 기업 ‘루닛(Lunit)’이 유일했다. 최근 1년간 새롭게 투자받은 스타트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100대 기업(누적 투자액 기준) 안에 단 한 곳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규제’라는 걸림돌이 차지하는 지분이 크다. IT전문 로펌인 테크앤로의 조사에 따르면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13곳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없고, 44곳은 조건부로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혁신모델 사업의 절반 이상, 누적 투자액 기준으로 70%에 이르는 혁신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꽃 피울 수 없거나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발표된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지수에서 한국의 창업 생태계 진입 규제 환경은 65개국 중 49위에 머물렀다. 한국 스타트업의 61%는 창업 3년내 중도 탈락하고, 성장하는데 13년이나 걸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15년 3.2였던 한국의 부담지수는 2017년 3.0으로 하락했다. 이 점수는 낮을수록 정부 규제가 강하다는 뜻으로, 한국의 규제 강도가 되레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 기간 미국은 3.4에서 4.0으로, 일본은 3.5에서 3.6으로 높아져 규제 부담이 줄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부담지수는 4.1로, 한국을 멀찌감치 앞서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규제로 에워싸여 혁신에 주춤하는 사이 뉴욕거래소와 나스닥의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은 최근 10년 동안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젊은 IT기업으로 세대교체되면서 평균 업력이 14년 젊어졌다. 이 기간 한국거래소 상위 10개 업체는 15년의 나이를 더 먹었다.
전문가들은 규제를 혁파해 신산업의 활로를 뚫어주지 못한다면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빠르게 도태될 것으로 우려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선도 업체와 후발 주자간 격차를 좁히는 것이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재계 대변인’을 자처하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가진 신년인터뷰에서 기자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가능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한 게 옳은 일입니까?”, “새로 생기는 산업들에 대해 규제의 벽이 더 많다고 하면 이해가 됩니까?” 답변을 원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현실을 되물은 것이었다.
박 회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규제는 더 늘어야 하지만, 낡은 규제들은 정말로 이제 없앨 때가 됐다”면서 “글로벌 시장을 내다보면 눈앞이 깜깜한데, 기업들이 (규제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답답해 했다. 그는 “4차산업 영역으로 가면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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