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행정부와 유럽연합(EU)간의 긴장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른다. 국방 통상문제등을 둘러싸고 보수적인 미국 정부는 유럽과 보다 까다로운 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영국은 중간자가 된다. 전통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영국은 편안한 제 위치를 찾을 수있을까.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이렇게 지적한다. 영국은 미국에게도, EU에게도 친구이다. 영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서로가 오해(misunderstanding)를 갖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부터 영국 정부는 “정권이 바뀌어도 양국간의 ‘특별한 관계’는 확고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외무장관인 로빈 쿡은 “(정권교체가) 아름다운 우정의 새로운 출발일 것”이라고 듣기에 따라서는 간지러운(?) 멘트까지 동원했다. 이번주에 쿡은 워싱턴을 방문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회동한다. 또 이달안에 토니 블레어 총리도 미국에 가서 부시 대통령을 만날 것이다.
영국이 뭔가에 의해 긴박하게 움직인다는 느낌을 준다. 영국의 노동당은 이데올로기 적으로 클린턴 전 행정부와 보다 근접하다고 볼 수있다. 정권이 보수성향인 공화당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영국이 서두는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다. 사실은 EU와 미국 그리고 영국이란 삼각관계의 진전모습이 영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신조중 하나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조란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회원국으로서 유럽연합과도 돈독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 관계가 껄끄러워진다면 영국은 신조를 깨고 어느 일방을 선택해야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쿡 외무장관은 유럽내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쇠약해지면 미국과의 경제적인 관계나 전략적 관계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즉 영국은 EU안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만 미국에 대해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할 수있다는 의미이다. 대서양 양쪽의 관계는 방위와 경제적 문제로 요약된다.
방위문제에서는 미국의 주도하에 유럽이 약간의 고집을 부리는 정도였으며 경제문제에서는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손을 잡거나 등을 돌리곤 했다. 경제적인 문제(항공기 보조금이나 이산화탄소의 배출)에서 양국은 다소간 유럽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조심스럽게 유지되던 균형에 약간의 변화가 일고 있다. 한편으로 경제적으로는 대국이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유럽연합이 세계체제속에서 신중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하고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에서도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수년동안 유럽보다는 아태지역과 중동지역에서 다루기 힘든 전략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곧 미국이 유럽방위에서 이탈내지 멀러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양자를 모두 신경써야 하고 아태지역과 중동이 새로운 고민거리로 부각되면서 유럽방위에 대해 ‘참을성이 부족해지는’ 방향으로 미국의 태도가 변할 것이란 데 문제가 있다.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사용했던 단어였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세계무대에서의 이해관계와 다양해진 인종구성으로 인해 다른 많은 나라들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됐으며 영국 또한 이스라엘 일본 멕시코 캐나다등 많은 나라들과 결코 덜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관계는 사실 1,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훨씬 더 공고해졌던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등장하곤 했었다. 그러나 영국이 세계무대에서 위상을 잃어가면서 특별한 관계는 역사 문화 방위 군사 지식등 아주 ‘특별한 분야’에서의 관계에 국한된 말로 변질되기도 했다.
앞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영국이 EU와 보다 끈끈하게 얽혀들어갈 것이며 여기에는 미국의 강한 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의 ‘특별한 관계’가 가졌던 중요성은 서서히 감소돼 들어갈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양자가 서로를 잘못 파악하지 않도록 하는 임무가 될 것이며 이런 속에서 영국은 양자와 친구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