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음 빚은 건축물 품은 숲에서 ‘나’를 비우고, 담다

사유와 명상의 수목원, 경북 군위의 ‘사유원’
1인 입장료만 5만원, 식사비까지 20만원 넘겨
입장객 200명 제한해도 SNS에 핫플레이스 등극
나무 살 곳마련 위해 20만평 넘는 임야 사들여
알바로 시자 등 거장의 건축물이 곳곳에
  • 등록 2022-07-15 오전 6:00:00

    수정 2022-07-15 오전 7:30:07

사유원 느티나무 숲 가장자리에 대나무로 높이 세워 지은 ‘조사’(鳥寺)는 ‘새들의 수도원’이란 이름 뜻 그대로 새를 위한 건축물이다. 비무장지대(DMZ)의 설치미술 프로젝트로 기획된 작품으로, 세월이 지나면 썩어 넘어져 자연으로 되돌아가도록 의도해 만들었다.


[군위(경북)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북 군위의 수목원인 ‘사유원’(思惟園). 사실 수목원으로 규정하기에는 모호한 공간이다. 보통 수목원의 주인공은 나무와 꽃 등 식물이다. 이곳에선 조금 다르다. 사유원의 주인공은 관람객이다. 그 이름에 힌트가 있다. 사유원의 글자를 풀이하면,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대상이란 이런 것들이다.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와 하나하나 의미를 단 이름과 문구들, 그리고 숨 막히게 아름다운 건축물들…. 단순한 관람이라는 행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관람객은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 속에서 위안과 평안을 얻고, 익숙한 물건 하나에도 세심하게 이름 붙인 주인장의 정성에서 그 가치를 되돌아보며, 거장이 만든 위대한 건축물 앞에서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유원의 시작은 모과나무였다

사유원의 설립자는 대구의 태창철강이라는 기업을 성공적으로 일군 유재성 회장이다. 태창철강은 철강유통을 주업으로 하는 향토기업이다. 잘 나가는 중견기업의 회장은 왜 이곳에 수목원을 만들었을까. 그 시작은 ‘모과나무’였다. 유 회장은 태창철강 정원을 관리하던 정원사의 귀띔으로 300년 남짓 수령의 모과나무 4그루가 일본으로 밀반출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그는 부산항으로 달려가 컨테이너에서 모과나무를 발견했고, 2000만원에 웃돈을 더주고 그 나무를 도로 사 왔다. 당시가 1989년이었다. 이후에도 유 회장은 30여 년간 끊임없이 귀한 나무를 수집했고, 그 나무들이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이곳에 약 66만㎡(약 20만 평)가 넘는 땅을 사들였다.

사유원의 터줏대감인 풍설기천년의 모과나무. 저마다 전위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그렇게 수십년간 수집한 고목 수천 그루가 이 땅에 옮겨 심어졌다. 이후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에게 의뢰해 이곳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건축물을 지었다. 여기에 장인이라 불리는 한국과 일본의 조경 전문가에게 맡겨 풀과 나무, 그리고 돌과 물의 위치를 정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만든 공간이 바로 사유원이다.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누구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할 오랜 시간과 적잖은 돈, 그리고 가늠하기 어려운 정성을 이곳에 쏟아부은 것이다.

지난달 30일 거친 빗속을 무려 6시간을 달려 겨우 사유원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넉넉잡아 3시간 30분이면 도착했을 거리였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약속했던 시간은 훌쩍 넘어 버렸다. “비가 많이 와서 늦었습니다”라는 기자의 말에 담당자는 오히려 “먼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다”며 인사부터 건넸다. 이어 “여기는 비가 너무 안와서 걱정입니다. 계속 물을 뿌려주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네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유원 관리자들은 더위와 가뭄에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른 땅에 물을 계속 뿌려도 금세 말라버릴 정도였다. 나에게는 야속했던 비가, 다른 이에겐 간절함이었던 것이다. 사유원에서의 첫 ‘사유’는 그렇게 시작됐다.

건축가 최욱이 설계한 사유원의 카페 ‘가가빈빈’ 앞에는 물에 발을 담그고 팔공산 능선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관람객 뒤편으로 보이는 팔공산까지는 무려 1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시야를 하나도 가리지 않아 더 장쾌하게 느껴진다.


스님이 알려준 사유하는 방법

사유원에서 가장 외딴 장소에 들어서 있는 수도원 ‘와사
사유원을 찾은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언젠가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더니, 작은 시골 마을인 군위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입장료만 5만원(학생은 4만 5000원), 식비까지 합하면 20만원 이상의 비용을 이들은 기꺼이 지불했다. 사유원을 방문하기로 한 건 그 공간의 가치보다 ‘인기 비결’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그게 방문객들의 단순한 호기심인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 이유를 잣대 삼아 현미경 안을 들여다 보듯 사유원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안내를 받아 천천히 사유원을 둘러봤다. 좁은 길을 따라 사유원의 대표 공간과 건물들, 그리고 나무 사이사이에 난 길을 한참을 돌아다녔다. 사유원은 일정한 규칙을 갖춘 공간은 아니었다. 곧다 싶으면 둥글어지고, 둥글다 싶으면 툭 불거졌다. 길도 마찬가지. 곧은 길인가 했더니, 금세 돌아가고 꼬불꼬불 경사도 많았다. 안내 지도를 펼쳐봐도 어디쯤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관람객에게 비콘 목걸이를 입구에서 걸어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중앙통제실이 관람객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리 넓지는 않은 공간이지만 숲 속이나 나무 사이의 길을 걷다보면 가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잃어버릴 때가 있다는 설명이다. 곳곳에 CCTV와 비상벨을 설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충 넘겨도 될 듯 싶은 시설들이지만 이마저도 승효상 건축가가 손을 댔다.

사유원의 한국식 정원 ‘유원’


자연스럽게 상상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 건물이 왜 여기 있을까’, ‘이 커다란 나무는 어떻게 옮겨졌을까’,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등등. 어느새 상상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다시 의문으로, 의문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커다란 벽도 만났다. 생각지도 못한 걸출한 거장의 이름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고, 몇백년 묵은 나무 앞에선 먹먹해졌다. 사유원이라는 공간과 건물, 그리고 오래된 나무가 주는 중압감이었다.

우연히 한 건물 속으로 들어서는 스님을 만났다. 경남 창녕의 한 사찰에서 왔다는 그 스님에게 ‘이곳은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를 묻자 “사찰을 증축하려고 하는데 답사를 겸해서 왔습니다. 건축가가 사유원을 꼭 방문해보라고 추천해서요”라고 말했다. “스님께선 사유가 일상이실 텐데, 이곳에서는 어떤 사유를 하실 건지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스님은 망설임 없이 “공간과 건축 작품에서 얻는 사유는 명상이나 기도를 통해서 얻는 사유와는 또 다릅니다”라고 답하며 뒤돌아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작고 고요한 예배당 ‘내심낙원’의 내부


사유원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

그제야 사유원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곳곳에 적힌 ‘이름’과 ‘문구’들. 사유원에는 온갖 사소한 것에도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 화장실 문패 앞에 눈길이 먼저 갔다. 사유원 화장실의 이름은 같은 게 하나도 없다. 독락사(獨樂舍), 세욕소(洗慾所), 망아정(忘我亭), 귀락와(歸樂窩), 망우정(忘憂亭) 등등. 이 모든 이름은 한학에 정통한 유 회장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했다. 글씨는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인 웨이량이 썼다.

한자의 의미를 풀어보면 더 재미있다. 혼자 즐기는, 욕망을 씻어내는, 나를 잊는, 근심을 잊는 곳으로 화장실을 표현했다. 같은 목적에 의미를 다르게 부여했을 뿐인데, 공간이 달리 보였다. 사유원의 의자(평상, 나무, 철)에도 글씨가 쓰여 있다. 앉아서 모두 잊어버리라는, 마음을 비우라는 뜻의 ‘좌망심재’(坐忘心齋)다. 걸음을 늦추고, 시선을 낮추면 보이는 글귀들이었다. 물론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설립자의 세심한 정성에 저절로 눈이 가고 마음이 갔다. 또 어떤 글귀로 나를 이끌지 기대도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깊은 사유에 빠져들었다.

앉아서 모두 잊어버리라는, 마음을 비우라는 뜻의 ‘좌망심재’(坐忘心齋)


곳곳의 건축 작품에서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건물들은 한데 모여 있는 게 아니라, 길 줄기 사이사이에 열매처럼 들어서 있다. 승효상·알바로 시자·최욱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가들의 작품들. 승효상은 지난 2010년 유 회장의 집 별채를 설계하고, ‘모헌’(某軒)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을 정도로 둘의 인연은 깊다. 이후 유 회장은 승효상에게 수목원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상의했고, 그는 단순한 수목원이 아닌 사유와 명상을 위한 장소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승효상은 사유원의 출입구부터 화장실, 벤치까지 사유원의 인공적인 요소 대부분을 디자인했다. 명정·사담·와사 등 사유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그의 작품. 재미난 점은 승효상은 모든 건물을 땅속으로 넣거나, 묻히게 했다는 것이다. 그의 건축노트를 살펴보면 그 뜻을 잘 헤아릴 수 있다. 그는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듯한’ 건물을 짓기를 바랐다. 지나치게 건축에만 집중하면 수목원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유원의 대표적인 건축 작품인 알바로 시자의 소대(앞)와 소요헌(뒤). 소대는 소요헌을 전망하기 위해 만든 전망대다.


◇사유원을 빛나게 하는 주인공들


그래도 사유원에는 유별나게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 있다.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 거장인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작고 고요한 예배당인 ‘내심낙원’과 본래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으려 했으나 건축이 취소되며 설계도로만 남은 것을 사유원에 세운 ‘소요헌’, 그리고 소요헌 전망대인 ‘소대’가 그의 작품이다. 뜻밖의 사실은 길이나 의자 등 공간 하나하나에 이름과 설명을 붙였던 그런 세심함은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알바로 시자뿐아니라 다른 건축가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소요헌만 해도 그렇다.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미술 작품이라 할 만한 공간. 하지만 작품 설명이 없으니 도무지 건축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설명이 감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선입견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무 선입견 없이 사유원을 직접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 사유원 담당자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저마다 신선한 경험과 영감으로 소요헌을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관람객은 건축 작품 하나하나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 거장인 알바로 시자의 작품인 ‘소요헌’ 내부에 설치된 설치작품. 소요헌은 입구에서 y자 형태로 갈라진 구조물 양 끝에 각각 폭력을 주제로 한 공간과 생명을 주제로 한 공간을 조성했다. 본래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으려 했으나 건축이 취소되며 설계도로만 남은 것을 유재성 태창철강 회장의 오랜 설득으로 사유원에 세워졌다.


이곳의 터줏대감인 모과나무에선 또 다른 생각에 빠진다. 사유원의 시작은 모과나무 네 그루부터였다, 그래서 이들을 터줏대감이라 불러도 되겠다. 이 모과나무가 자리한 곳은 ‘풍설기천년’이라고 이름 붙은 나무밭이다. 바람과 눈을 1000년을 이겨내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사유원 정상부에서 다시 입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이 밭에만 모두 모과나무 108그루가 식재돼 있다. 수백년을 이겨온 나무들은 저마다 전위적인 모양으로 들어앉았다. 108번뇌에 빠진 다양한 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고, 인간의 오욕을 모두 짊어진 늙은 고승의 수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유원에서 가장 사유원 다운 공간이라고 꼽고 싶다.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 거장인 알바로 시자의 작품인 ‘소요헌’ 내부에 설치된 설치작품. 소요헌은 입구에서 y자 형태로 갈라진 구조물 양 끝에 각각 폭력을 주제로 한 공간과 생명을 주제로 한 공간을 조성했다. 본래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으려 했으나 건축이 취소되며 설계도로만 남은 것을 유재성 태창철강 회장의 오랜 설득으로 사유원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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