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불량무기 납품하고도 모르쇠, 해외 방산업체 '갑질'

방사청 2016년 국외상업구매 하자 현황 분석 및 조치계획 보고서 입수
130개 해외 방산업체, 국내에 하자 무기 납품..1650억어치
단종·부품조달 불가 등 이유로 하자 문제 해결 안해
방사청 "국제소송 불사, 손해배상 청구 등 하자품 집중관리"
  • 등록 2016-05-03 오전 5:30:00

    수정 2016-05-03 오전 8:26:19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미국 방위산업업체인 ‘헬리콥터서포트’는 우리 육군 수송용 헬기인 ‘블랙호크’(UH-60)의 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이 회사가 2년 이상 방치하고 있는 하자만 18건이다. 액수로는 약 2억2000만 원 규모다. 우리 공군에 조기경보시스템을 납품한 보잉사는 17건(202억원)에 대한 하자 보수를 2년 넘게 외면하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부품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F-15K 전투기의 야간정찰장비인 ‘타이거 아이’(Tiger eye) 고장 5건(10억원)을 장기간 방치하고 있다.

‘불량무기’를 우리 정부에 판매하고도 1년 이상이나 하자보수를 미루고 있는 해외 방위산업체가 113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2년 이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업체도 47곳이나 됐다.

2일 이데일리가 입수한 방위사업청의 ‘2016년 국외상업구매 하자 현황 분석 및 조치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군이 현재까지 구매한 외산 무기 중 약 1650억 원어치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부품 및 제품 하자로 인해 아예 운용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사용 가능한 무기체계 피해까지 감안하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진다.

특히 2년 이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하자 건수는 129건, 276억 원 규모다. 이중 보잉, 록히드마틴,GE 등 상위 10개사의 하자 건수가 83건으로 전체 하자의 64%를 차지했다. 금액 규모로도 84%(233억원)나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무기체계 전문가는 “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하자 발생 시 업체가 결함제품을 수거하는 ‘리콜제도’ 등 제재조치가 가능하지만 외산 제품의 경우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제품에 문제가 있어 사고가 발생해도 해당 제품을 납품한 업체에 사고 원인 규명을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외산 무기 하자로 軍 전력 운용 차질

불량무기를 납품하고도 ‘나몰라라’ 하는 해외 방위산업체의 행태는 단순히 금전적 피해 뿐 아니라 우리 군의 전력 운용까지 위협한다. 그러나 군당국이 수입하는 외산무기 중 상당수는 다른 제품으로 대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하자보수 지연 등 해외 방산업체의 ‘갑질’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의 ‘2016년 국외상업구매 하자 현황 분석 및 조치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방산업체가 납품한 불량무기 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하자건수는 2016년 1분기 현재 907건이다. 금액기준으로는 약 1650억 원어치가 ‘불량품’이다. 개별 기업이 아닌 판매국 정부가 품질을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 구매품의 하자까지 포함할 경우 2600억 원어치나 된다.

군별 하자 보유 현황을 보면 건수(426건)와 액수(789억 원) 모두 공군이 가장 많았다. 전투기 한 대에만 수십만개의 부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가격도 고가여서다. 해군의 경우 하자 보유 건수는 189건으로 3군 중 가장 적었지만 액수는 695억원으로 공군에 이어 많았다. 육군 및 국방부 직할부대의 하자는 292건(161억 원)이다.

가장 큰 문제는 1년 이상 불량품이 수리, 교환되지 않은 장기 하자 건수가 많다는 점이다. 1년 넘게 해결 못한 하자 건수는 372건(595억 원)이나 된다. 이중에서도 2년 이상이나 하자가 개선되지 않은 건수도 129건( 276억 원)에 달했다.

단종 이유로 부품값 6배 인상 요구도

무기체계와 부품 하자는 단순히 금전적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하자가 심각한 결함일 경우 해당 무기를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돼 우리 군 전력 운용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단순 부품 하자에도 해당 기능 또는 무기체계 전체가 사용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 관계자는 “해외업체의 하자 보수가 지연될 경우 수리가 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해당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장비를 운용한다”고 말했다. 해당 기능이나 장비가 꼭 필요할 경우 다른 제품에서 부품 등을 빼내 수리가 되기 전까지 대체해 사용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장비나 수리 부속품에 하자가 발생하면 공급자의 실수로 파손·불완전품·이종품을 납품했는지, 아니면 운송시 하자가 발생했는지의 책임 소재를 따져 제품을 교환하거나 피해배상 등의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해외 방산업체들은 해당 부품이나 제품 단종을 이유로 부품 공급 또는 수리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5건의 제품 하자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록히드마틴의 ‘타이거 아이’가 대표적이다. 타이거 아이는 적외선과 레이저를 방출해 전투기 등이 야간에 정찰이 가능하도록 돕는 장비다. 지난 2009년 F-15K 전투기 1차 도입 때 10여 대를 구매해 사용해 왔다. 문제는 이후 제품에 하자가 발생해 수리를 요구하자 록히드마틴 측이 도입 초기와 비교해 6배나 오른 부품 가격을 요구해 하자 보수가 지연되고 있다. 록히드마틴 측은 타이거 아이의 생산이 이미 중단돼 우리 군만을 위해 별도로 부품을 생산해야 해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자 구상 지연 배상금 부과제 등 하자 관리 강화

부품 수급 문제 등으로 하자보수가 지연되는 사례가 늘면서 전력운용에까지 악영향을 미치자 방사청은 하자보수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부품을 조달하거나 늑장 수리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작년부터는 하자보수가 지연될 경우 배상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수입무기에 하자가 발생해 해당기업에 수리를 맡겼지만 약속한 날짜까지 수리하지 못하면 지연된 날 만큼 배상금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 공군이 전력화한 F-15K 전투기 40대의 경우 350여 품목의 부품에 하자가 발생해 미국 보잉사에 수리를 맡겼다. 그러나 보잉사는 당초 약속한 기간을 6개월이나 넘겨 제품 수리를 끝냈다. 방사청은 늑장 수리에 대한 배상금을 청구해 80억원을 받아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누적 하자보수는 2012년 1141건에서 올해 1분기 현재 907건으로 감소한 상태다. 최근에는 130개 하자 발생 해외 방산업체에 늑장 수리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메일을 일괄 발송했다. 방사청은 하자보수에 소극적인 해외 방산업체에 대해서는 국제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하자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대부분이 단종된 무기체계의 수리 부속 조달 문제”라면서 “해당 업체에 이메일 등을 통해 하자 문제의 조기 해결을 촉구하고 있으며 전력 공백 최소화를 위해 우리가 직접 해당 부품 업체를 찾아 제품을 수급하고 향후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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