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가고 사진은 남아…카메라로 그린 장욱진·김창열·천경자

가나문화재단 '문선호 사진, 사람을 그리다' 전
'인물사진거장'이 포착한 '시대 거장'
김대중·이병철·윤정희·최불암·조수미…
수많은 미술인 좇은 '예술가 초상'도
사람 향한 관심·이해·소통 새긴 작업
  • 등록 2021-03-31 오전 3:30:00

    수정 2021-03-31 오전 3:30:00

‘인물사진의 거장’ 문선호가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장욱진을 카메라로 그려낸 ‘장욱진’(1975·2021 리프린트, 젤라틴 실버 프린트)(사진=가나문화재단).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1. 앙상한 몸에 큰 키, 슬쩍 굽은 어깨와 콧수염. 길을 가다가도 한눈에 알아볼 저이는 장욱진(1917∼1990) 화백이다. 그림 그리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고 자신을 ‘환쟁이’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여기지 않았던 사람. 소박하고 순진한 화풍으로 집·가족·길·나무·까치를 수없이 그렸던 사람. 그렇게 심플·단순의 미학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우뚝 솟아오른 사람.

# 2. 저때가 언제쯤이려나. 무심한 듯 잘 다듬은 얼굴의 수염도 그대로고, 곧 떨어질 듯 영롱하게 맺힌 캔버스의 물방울도 그대로다. 맞다. 김창열(1929∼2021) 화백. 유독 일상을 잘 내보이지 않았던 저이는 또 결국 작업실 한쪽을 지키고 있다. 무슨 생각에 저리 골몰한가. 면벽 9년 만에 득도해탈한 달마대사에 빗대며 자신을 탓하는 중인가. 생전 어느 자리에서 화백은 “수십년 미친놈처럼 캔버스를 마주하고 앉아 물방울을 그렸어도 득도 근처도 못 갔어” 했더랬다.

문선호의 ‘김창열’(2021 리프린트, 젤라틴 실버 프린트)(사진=가나문화재단).


그림도 아닌 화백을 ‘작품’으로 만든 건 ‘인물사진의 거장’으로 불린 문선호(1923∼1998)의 카메라다. 거장은 거장을 알아본다고 했나. 굳이 사진이 필요 없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붓으로 표현한 거장들이 아닌가. 굳이 손사래를 쳤을 그들을 향해, 아니 그들도 눈치 채지 못했을 찰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른 이는 또 다른 거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선호는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인’을 줄곧 렌즈에 담아왔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치인, 이병철·구자경 회장 등 기업인을 비롯해 김지미·김혜자·윤정희·최불암·이순재 등 배우, 여기에 시인 조병화, 성악가 조수미, 건축가 김수근 등등. 그중 김창열·천경자·오지호·남관·유영국·윤형근·서세욱·최만린·최종태·박서보 등, 미술인이 대거 눈에 띄는 건 스스로를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일 터.

문선호의 ‘천경자’(1975·2021 리프린트, 젤라틴 실버 프린트)(사진=가나문화재단).


1940년대 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서양화로 예술의 길에 들어섰던 그이는 1950년대 사진으로 도구를 바꿨다. 이후 ‘카메라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삶은 75세 타계할 때까지 이어졌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없었다면, 시대를 향한 통찰과 소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그래서인가. 그이의 사진 속 인물들은 편안해 보인다. 그이의 카메라가 그렇게 봤다면, 그랬던 거다.

4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서 여는 회고전 ‘문선호 사진, 사람을 그리다’에서 볼 수 있다. 인물사진 180점, 순수사진 20점을 걸었다. 생전에 사용했던 카메라도 내놨다.

문선호의 ‘서세옥’(2021 리프린트, 젤라틴 실버 프린트)(사진=가나문화재단).
문선호의 ‘윤정희’(2021 리프린트, 젤라틴 실버 프린트)(사진=가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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